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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 소설가 배길남의 기장 죽성 황학대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7-11 15:42:20, 조회 : 3,448, 추천 : 660


- 바다 위 하얀 돛단배도 황학대서 눈부시다

나는 10년 전 모 잡지의 의뢰로 기장지역에서 7년간 유배생활을 했다는 고산 윤선도의 흔적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대변항 근처의 마을 여관에 한 달간 방을 얻어놓고, 그 근방을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었는데 지금처럼 자료가 많지 않은 시기라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다행히 동네 노인 몇 분이 나의 사정을 알고 막걸리 한잔에 자료나 정보들을 아는 대로 알려주시곤 했었는데 그 중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했었다.

"그라믄 저 죽성 두모포 황학대에는 안 가봤는교? 고산 선생하면 거기가 진짜배기제."

두모포는 현재 죽성 두호마을로 불리고 있는데, 그 곳에 위치했던 두모포 군영이 부산진 부근으로 이전하며 이름까지 넘겨주었다는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죽성? 황학대와 두모포라…."

윤선도가 매일 들렀다는 황학대, 그리고 부산 두모포 왜관의 유래가 되는 지명 등등 그 곳은 호기심을 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다음날 당장 죽성 마을을 찾기로 했다. 대변항에서부터 길을 걸었다. 바다는 펼쳐졌고 산은 이어진 길이었다. 맑은 공기가 심신을 상쾌하게 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걸어 도착한 죽성 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한 포구였다. 한창 멸치를 잡을 무렵이면 우물처럼 생긴 화덕에 올린 가마솥으로 멸치를 삶고 말리느라 부산하다고 들었지만 내가 갔을 때는 철을 넘겼는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성 마을 주변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신앙촌 쪽 개발제한구역의 우거진 갈대밭에서 흐르는 죽성천은 천천히 바다로 흘러들었고, 물고기가 간간히 튀어 오르곤 했다. 하얀 왜가리도 서너 마리가 보였는데 놈들은 그 주변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방파제 오른쪽을 바라보면 바위 언덕이 높지도 낮지도 않게 들어앉아 소나무 30그루 정도를 안고 있었는데 이 언덕이 4백 년 전, 윤선도가 매일 찾았다는 바로 그 황학대였다. 그곳의 풍경에 반한 나는 남은 기간 동안 다른 곳을 취재하면서도 이곳에 꼭 한 번씩은 들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황학대에 올라 소나무 밑에서 파도를 바라보던 나는 나지막한 노래 소리에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바람 아제, 의원 양반, 위웅이는 위우웅~"

언제 올라왔는지 한 소년이 황학대 위에 널려진 쓰레기를 치우며 알지 못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소년이었지만 나는 그 소년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햇볕에 그을린 소년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고, 약간 헝클어진 머리칼 밑의 눈은 반짝거렸으며 입가엔 알지 못할 미소가 흘렀다.

"야, 쓰레기 치우나?"

소년은 날 흘깃 보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예의 그 노래만 흥얼거리며 다시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머쓱했지만 나도 근처의 쓰레기를 주워 다가가자 소년은 손에 든 쓰레기봉투를 내밀어 받았다.

"니, 요 동네 사나? 이름이 뭐고?"

그러자 소년은 내 얼굴을 멍하니 보더니 '히히' 웃고는 가파른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가 버렸다. 이후로도 소년을 몇 번 만났는데 방파제나 황학대에서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거나 쓰레기를 치우고 있곤 했다. 이상한 것은 내가 말만 걸려하면 도망쳐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궁금해서 평상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께 여쭤봤더니 한 할머니가 대답했다.

"저 아? 위웅이 말하는 긴 가베."

"위웅이요?"

곁에 있던 다른 할머니가 혀를 차며 소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아아가 원래는 안 저랬는데…."

"원래 부산에 학교서 전교 1등을 했다는 아아요. 저거 부모가 고리 근처 길천에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 갔다 했나?"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부산에 이사가가 시장 장사하다가 교통사고로 부모가 다 죽었다아이가."

"원자력인지 원전인지 저기 들어서가 그 동네 사람들 밥줄이 끊깃제. 그란데 나라에서는 나가라 케샀제. 그 바람에 부산가가 그리 된기지."

한 할머니가 되려 목소리를 높였다.

"묵고 살던 짓도 못하구로 하고, 집값도 제대로 안 치주이까 그렇지."

"저 아아가 지 부모 죽고 나서 이상해짓다카데. 여그 저거 할매가 사니까 일로 와가 있는 기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황학대 쪽을 바라보니 위웅은 또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갑갑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었다.

윤선도에 대한 취재가 거의 마무리 되던 때이다. 일광에서 기장군청을 거쳐 대변으로 걸어가던 길에 바람도 쐴 겸 황학대에 올라 잠시 쉬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위웅이었다.

"바람 아제, 의원 양반, 위웅이는 위우웅~"

뜻 모를 그 노래를 또 흥얼거리던 위웅이 내 곁에 털썩 주저앉더니 내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씨익 웃었다. 해맑은 웃음에 나도 모르게 같이 웃는데 위웅이 바다 쪽을 바라보며 "옛날에 있다아이가…"하고 말을 꺼내었다. 나는 소년이 바라보는 죽리 포구 앞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위웅은 저 쪽 바다에서 이야기를 건져내듯 담담하고 조용하게 말을 이어갔다.

억수로 옛날에 여기를 두모포라 부를 때 우리 가족하고 같이 살 때 이야기데이. 왜란 끝나고 여기에 만호영이 있어가 군사들도 많았다아이가. 그 때 우리는 물고기도 잡고 재밌게 살았데이. 동네 아제들이랑 우리 아부지랑 고기잡으로 나가면 얼마나 멋있었는 줄 아나? 아침이 되면 전부 하얀 돛을 달고 바다로 나가는데, 바다에 나가면 보이는 일광산 바위도 하얘가 반짝반짝. 바다 물결도 햇빛에 반짝반짝. 돛단배의 하얀 돛도 반짝반짝. 저어기 일광 쪽 바다부터 여기까지 하얗게 반짝거리는 기라.

그때 나는 몸이 아파가 조금만 무리하면 숨이 가빠서 아무 것도 못했거든. 그래가 뱃일도 못나가고 혼자 놀았다아이가. 여기 언덕에 올라가 한 쪽 귀에 소라껍데기를 대고는 파도소리하고 저 짝 부엉산에 부엉이 소리를 듣는기라. 그라믄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르제.

그란데 어느 날인기라. 여기 있던 만호영을 부산포로 옮기민서 거기에 성도 올리고 할라믄 사람이 부족하다고, 늙은 사람 빼고 전부 다 그리로 옮기라는 기야. 그때만 해도 나라에서 시키믄 따라야 했거든. 동네 사람 다 가고, 우리 집도 부산포로 옮깃다이가. 나는 몸이 아프니까 할매랑 여기 남게 됐제. 맨날 이 언덕에 올라가가 사람들 오는가 보고, 바다도 보고 했거든. 몇 년이 지나도 아부지 어무이는 안 오싯다. 그래가 10년이 안 지났나? 내는 그때까지도 몸이 약해서 잔일 밖에 못 했데이.

하루는 할매 그물 손질해주고 언덕에 앉아 있는데 누가 말을 거는기라. 낮에는 전부다 일하러 나가서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 그래가 돌아보이 어른 하나가 내를 쳐다보고 있다아이가.

"너는 왜 일 안 나가고 여기서 놀고 있느냐?"

옷을 입은 품은 보통사람하고 비슷한데 말투도 다르고 좀 이상한기라. 그래가 한마디 했제.

"나는 몸이 안 좋아가 물일을 못하요. 그라는 아제는 와 일안하고 노요?"

"허허, 그 놈 맞는 말 한다. 나도 어딘가 안 좋아서 이래 논단다. 그건 그렇고 귀에 소라껍데기는 왜 대고 있는고?"

"이거 이쪽으로 하고 파도 소리, 부엉이 소리 들으면 억수로 좋다인교. 그것도 모르는교?"

"진짜냐? 나도 한 번 들어보자."

그 아제가 옆에 턱 앉아가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고 파도 소리, 부엉이 소리를 한참 듣드만 껄껄 웃는기라.

"호오~! 이거 양방 입체 음향이구나. 제법 기특한 걸? 좋다 좋아. 너 나랑 술이나 한 잔 하자."

그러더니 옆구리에 찬 호리병을 내한테 건네는 기라. 나는 참말로 그때 술이란 거를 처음 묵어봤다아이가. 고거 몇 입 묵고 나이까 세상이 뾰롱뾰롱 도는 거이 진짜 직이데. 내 그래가 내 이름하고 우리 동네 얘기, 아부지 어무이 안 돌아오는 얘기, 내 아픈 얘기 술술 떠들어줬지. 그 아제는 웃긴 것이 내 말에 같이 열을 올릿다가 울었다가 웃었다가 하더라고. 참 재밌는 양반이데.

"위웅아, 동네 사람들 떠난 지가 얼마나 됐다고?"

"10년이나 됐다인교."

"으음…. 그래?"

한참 뭔가 생각하던 아제가 씨익 쪼개미서 내 머리를 쓰다듬데.

"어쨌든 좋구나. 바다도 실컷 보고 내 팔자가 상팔자다. 그런데 이 바위언덕 이름이 무어냐?"

"여게 이름이 어딨는교? 그냥 소나무 언덕이제."

그 아제도 취했는지 언덕 이름을 짓는다고 중얼거리더만 황학대라고 부르자데? 그래서 와 그렇냐고 물었지.

"아, 저기 노란 학이 돌아다니잖느냐?"

그래 봤더이 대내(죽성천)에 돌아다니는 왜가리가 저녁놀에 노래진걸 보고 헛소리를 안 하나? 웃기가 그냥 그라자고 했지. 그란데 이 양반이 뭐하는 사람인가 갑자기 궁금해지가 안 물었나?

"그란데 아제는 누군데 여기서 이라고 있는교?"

"나? 윤가라고 저기 한양서 온 의원이다. 그러고 보니 네 병부터 고쳐봐야겠구나. 하하하."

우리는 그날 그래가 헤어졌데이. 그란데 그 아제가 계속 우리 마을서 산다는 기라. 유밴지 뭔지 왔다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 쫓기 났던 거랑 비슷한 거였겠지. 하이튼간에 그 담날부터 온 산이고 돌아다니면서 약초를 캐오더니 내를 믹이는기라. 써서 안 묵는다 하면 뭐라카기도 하고. 이상한 운동도 시키쌓아민서 말이제. 진짜 웃긴 거로 평생 헐떡거리던 내가 실실 나았다는 거 아이가? 진짜로 신기하데.

"위웅~! 위웅~! 내가 소싯적에 놀 때 윤바람이라 불렸는데 니 놈하고 딱 맞구나. 하하하."

그라고 더 기쁜 일이 있었제. 동네 사람들하고 우리 아부지 어무이가 돌아온 기라. 한양에 임금이 누가 보낸 편지를 보고 '두모포 사람들을 다 돌리 보내라!' 했다던데 누가 보낸 건지는 알 수가 없지. 우쨌든 그래된 얘기다. 아! 하나 빠자 묵었는데 내가 몸이 나은 걸 보고는 사람들이 아제를 한양 의원님이라 불렀거든? 그란데 내만 그 아제를 '윤바람'하고 불렀다아이가. 히히.

이야기가 끝났는지 위웅이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난 소년의 희한한 옛날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같이 일어났다. 그때 위웅이 날 툭 치고는 손가락질을 했다.

"봐라, 저거 보고 황학대라 했데이. 히히."

마침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죽성천을 거닐던 왜가리 한 마리가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황학대를 내려오자 바로 앞에 있는 '두모포 슈퍼'가 눈에 들어왔다. '두모포'란 이름이 갑자기 다르게 다가왔다. 위웅이가 살았다던 '길천'이란 곳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이들은…'으로 시작하는 뻔한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코끝이 찡해져 오는 건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약력
●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사라지는 것들'로 등단
● 현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장
● '증오하지 말고 심수창처럼', '부산데일리 훌랄라 기획부', '램프불 옆 에드워드' 등 다수 작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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