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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4> 소설가 이정임 '광안리 해수욕장의 별낚시'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7-31 15:48:04, 조회 : 2,578, 추천 : 482

- 이 별들을 낚아 올리면 우리의 미래도 반짝일까

장마의 막바지라 그런지 공기가 눅눅했다. 허공에 대고 주먹을 꼭 쥐면 물기가 배어나올 것 같았다. 오전에 비가 그치고 오후 내내 흐리더니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쯤 하늘은 빠른 속도로 개고 있었다. 식당의 텔레비전에서는 내일 태풍이 북상하니 농작물,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고 했다. 태풍이 지나가면 장마가 끝나고 세상은 빛의 열기로 가득 찰 것이었다.

컥! 마이콜이 콩나물국밥을 급하게 떠 넣다가 짐승이 낼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러곤 켈룩거렸다. 마이콜의 입에 있던 밥알과 콩나물, 고춧가루 몇 점이 테이블로 튀었다.

에이, 가씨나야, 계란도 아직 안 터트렸는데! 드러버 죽겠네.

나는 손으로 뚝배기를 가리며 소리 질렀다. 고춧가루가 코로 들어갔는지 눈물 콧물을 쏟던 마이콜이 벌건 얼굴로 킬킬거렸다. 그러다 우는지, 웃는지 암튼 희한한 얼굴을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봐라, 안전관리는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니가? 태풍 오는 바닷가에서 소주 마시는 백수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그것도 힘이 남아도는 청년 백수.

가만히 듣고 있던 복길이가 마이콜의 잔에 소주를 부으며 말했다.

그 얼굴로 남자를 꼬셔서 자빠뜨리진 못할 끼고, 바다에 뛰어들라면 우리 안 볼 때 들어가라잉.

그래. 복길이 말이 옳다. 일단 니 스마트폰은 내한테 맡기자.

마이콜은 자신의 폰에 손을 대는 내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그 부탁 들어줄게. 대신 너거 노른자는 내 도.

복길이와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으은다!

해지기 직전의 바다는 빙판처럼 매끈하다. 우리 셋은 항상 이 시간을 좋아한다. 학교수업이 일찍 끝난 날은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걸어와서 흰빛, 붉은빛으로 불투명해지다 깜깜해지는 바다를 보곤 했다. 이때는 세상도 고요해진다. 졸업을 하고 세 해가 지나는 동안 우리는 이곳을 찾지 않았다. 초반에는 취업준비, 알바 등으로 각자 바빴고 후반에는 마이콜이 서울로, 복길이가 울산으로, 외계인인 나는 부산에 직장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명절마다 시내에서 잠깐 만나기만 했을 뿐 예전처럼 이곳을 어슬렁거리며 노닥거리진 못했다.

박봉에 시달리며 고시원 생활을 하던 마이콜이 일을 그만두고 도망치듯 내려오고 복길이가 이른 여름휴가를 받아 고향에 오고서야 우리는 다시 이곳에 모이게 되었다. 그 사이 광안리는 많이 변해 있었다. 변심한 애인의 미니홈피에 몰래 들어갔는데 나보다 더 잘난 여자랑 연애하는 사진을 본 심정이랄까. 더욱 화려해지고 세련되어졌다는 것이 괜히 괘씸하고 섭섭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광안대교는 색색의 조명을 밝혔고 도로에 인접한 가게에서는 음악소리가 쿵쿵거리며 우리의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말없이 신발을 벗고 모래 위를 걷기 시작했다. 백사장에는 연인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해변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해수욕장의 한가운데쯤 이르자 마이콜이 주저앉았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사온 깡통맥주를 홀짝이며 비릿한 저녁 바다 냄새를 맡고, 검어지는 바다를 지켜보았다. 흰 빛, 푸른빛으로 가득한 광안대교 주탑 꼭대기에 빨간 항공장애등 램프가 깜빡거렸다.

저 광안대교 조명 개념이 '부산의 꿈을 담고 미래를 향해 높이 비상하는 갈매기'란다. 진짜 갈매기 같지 않나?

아니, 내 눈에는 신경질적이고 깡마른 여자의 뾰족한 가슴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풋, 니 가슴처럼?

압, 내 가슴이 어때서? 이 정도면 꽤 글래머라고 자부한다.

아암,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겠지.

머라꼬? 이걸 콱, 마!

복길이와 마이콜이 킬킬거리며 뒤엉켰다.

내 눈에는 거대한 네트 같다. 늘어진 테니스 코트용 네트.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광안대교 저 너머를 보기 위해 실눈을 뜨고 노려봤다. 광안대교 너머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나는 불빛 몇 개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주에 맥주까지 더했더니 취기가 올라 모래밭으로 벌렁 드러누웠다. 꿈을 가진 갈매기가 높이 비상해야 하는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복길이와 마이콜이 나란히 내 옆에 누웠다.

광안대교가 네트면 저쪽에서 공 서브하는 사람은 누군데? 마이콜이 물었다. 신이겠지, 뭐. 복길이가 말했다. 복길이의 말이 그럴 듯 했다. 나는 실없는 말들을 더 늘어놓았다.

그래. 신이 광안대교 저쪽에서 계속 공을 서브해 넣는 거라. 아니다. 별을 공삼아 서브하는 거지. 신이 별을 서브하는데 이놈의 인간들은 그걸 받아칠 생각을 안 하고 다 자기네 집에, 가게에 달아놓기만 한 거지. 받을 줄만 알고 줄 줄은 몰라서. 그래서 하늘에 별은 하나도 없고 건물들만 번쩍거리는 거다.

가시나! 영화 찍고 앉았네. 그나저나 인간들 참, 공을 받았으면 쳐야지. 스포츠 정신이 없네.

게임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거라.

우리는 술에 취해 깔깔거렸다. 끈적한 피부에 닿는 모래가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여름밤이었다.

야, 외계인. 니 살던 별이 안 보여서 속상한갑지? 마이콜이 내게 말했다.

그래. 비정규직으로서 계약만료 날짜도 다 돼 가는데 재계약 통보는 없고. 돌아가야 할 내 별은 안 보이고, 큰일 났다. 마이콜. 내 고향 깐따비야 별로 보내도.

야, 나는 백수 아이가. 복길아! 너밖에 없다. 계인이한테 자기네 별로 떠날 자금을 대라.

웃기고 앉았네. 씨, 나도 다른 회사 알아봐야 될 판국이구만.

마이콜과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복길이를 쳐다봤다.

왜에? 니는 월급도 꽤 되잖아.

그래, 니는 정규직이잖아!

복길이가 일어나 쓸쓸한 눈으로 말했다.

회사가 망하려는지 월급이 자꾸 밀린다. 요즘은 방세도 못 낼까봐 무서워 죽겠다.

우리는 가만히 광안대교를 바라봤다. 여기는 온통 반짝거리네. 진짜 별을 달아놨는갑다. 주변을 둘러보던 마이콜이 말했다.

복길이가 말을 받았다. 우리는 언제쯤 별을 받을 수 있겠노. 별을 가지면 저렇게 반짝거릴 수 있겠나.

내가 대답했다. 우리한테 서브해 줄 별이 더 이상 없는 거 아닐까.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공기 질감이 달라지더니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어나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 쪽으로 걸었다. 호안도로 벽화거리는 환했고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방파제 쪽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난간에 기대 방파제 쪽을 내려다보니 형광찌를 바다에 드리우고 낚시를 하는 남자들 틈에 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옆에는 버너에 불을 켜고 고기를 굽는 중년 여성 둘이 앉아 있었다.

아, 나도 삼겹살 먹고 싶다. 여기서 고기 구워먹어도 되나? 확, 신고해버릴까보다.

야. 삼겹살이 아니고 생선 구워 먹는다. 저기 봐라. 물고기잖아. 낚시한 거 구워먹는갑다. 우리도 나이 들면 저러고 있는 거 아닐까?

우리는 낚시할 줄 모르잖아.

배워야지, 뭐.

아가씨들. 내려와서 같이 먹어요. 무리 중의 한 명이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그래. 한 입씩 먹고 가요. 다른 여성이 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헌팅인가. 내가 중얼거렸다.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 아쉽다만. 좋다, 삼대 삼, 짝도 잘 맞네. 복길이가 말했다. 그래, 우리에겐 술이 있고 저쪽엔 안주가 있다. 마이콜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언니들. 고기는 좀 낚여요? 우리는 맥주가 있어요. 복길이가 가방에서 여섯 개들이 캔맥주를 꺼내며 싱글거렸다. 엄마뻘로 보이는 여자들은 언니라는 호칭에 깔깔거렸다. 마이콜과 나는 복길이를 쳐다보며 어딜 내놔도 잘 살 거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들은 남편들에게 휴가를 얻어 한 친구의 집에 모였다가 색다른 놀이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낚시를 나왔다고 했다. 저 집이 우리집이야. 낚시를 하던 '언니'가 아파트의 어느 한 집을 가리키며 우리가 사온 맥주를 마셨다. 재미로 찌를 던졌는데 진짜 고기가 낚여서 부랴부랴 버너를 들고 나와 굽는 중이라 했다. 한 언니가 조금 전에 낚은 손바닥만한 메가리를 다듬고 있었다. 먹을 것이 별로 없었지만 우리는 신이 나서 왁자하게 떠들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우리를 힐끗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서늘한 바람이 우리의 등을 스치며 지나갔다.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물고기는 아까의 두 마리를 끝으로 더 이상 낚이지 않았다. 바다에 떨어진 별도 많구나. 내가 중얼거렸다. 바다를 가만히 보니 간판과 광안대교에서 반사된 빛 때문에 바닷물도 수십, 수만 개의 빛으로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우리 저거라도 낚을까? 복길이가 말했다. 그러자 마이콜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 우리는 쿨하게 스스로 낚자. 별 따위 누가 안 던져주면 어때? 그러곤 언니에게 다가가 직접 낚시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미끼를 끼우는 법과 찌를 보는 법을 간단히 배웠다.

밤이 깊었다. 광안대교의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 건물들의 형형색색 간판 불빛도 매미의 울음소리만큼 맹렬하게 발했다. 그럴수록 바람세기는 커졌고 바닷물은 더욱 많은 빛 조각들로 분할되었다.

휙, 하고 바람이 불자 광안대교 주탑 꼭대기의 항공장애등이 형광 낚시찌처럼 깜박거렸다. 광안대교는 거대한 낚싯대 같기도 하구나. 하고 생각할 때쯤 광안대교의 항공장애등 아래로 달이 보였다. 나는 광안대교를 낚싯대 삼아 달을 낚는 상상을 했다.

어어? 마이콜과 복길이가 소리쳤다. 낚싯대의 찌가 위 아래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물었니? 언니들이 흥분하며 낚싯대 쪽으로 몰려갔다. 형광 찌 주변으로 거대한 주황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까 생각했던 달이 낚여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광안리 바다는 물 반, 별 반이네.

복길이가 내게 속삭였다.

이 별들을 낚으면 우리 미래도 반짝일까?

내가 되물었다.

그때 낚싯대를 꽉 잡아 올리는 마이콜이 크게 소리쳤다.

대어야, 대어!

■ 약력

-1981년 부산 출생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등단

-부산소설가협회 사무차장

-단편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 '반짝반짝, 빛나는' 등 발표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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