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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5> 시인 이은주 이기대 공룡 이야기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8-10 11:03:13, 조회 : 2,937, 추천 : 544

- 진화 중인 그들의 사랑

벌써 10여 년 전이다. 비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남구신문 명예기자를 하던 시절, 아침 일찍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기대 바닷가로 취재를 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날씨도 안 좋은데 무슨 취잽니까?"

"이기대 바닷가에 공룡발자국이 발견됐답니다."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던 나는 공룡발자국이라는 말에 갑자기 마음이 설렌다. 몇 천만 년 전에 우리보다 먼저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지금은 사라진 공룡.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시간 속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장자산 산자락으로 난 비스듬한 길을 옆으로 기어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갔다. 굵은 비는 억세게 퍼부었고 바람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불어댔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사위가 온통 회색빛이었다. 우산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날씨가 궂었다. 먼저 도착한 다른 신문사 기자들은 바닷물이 고여 있는 크고 작은 웅덩이를 살펴보며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느라 분주했다. 내 눈에는 다만 웅덩이로만 보이는데 지질학자의 눈에는 분명 공룡발자국 화석이다. 옆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불현듯 왜 발가락은 보이지 않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각도를 달리해도 발가락은 없다

180도

2000년 1월 12일 용호동 이기대 바닷가 해양초소 앞 너럭바위에서 공룡발자국 화석 40여 개가 발견되었다. 국내 공룡 발자국 권위자로 알려진 부산대 김항묵 지질학 교수는 "이기대 일대에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중생대 전기 백악기인 9천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지름 50~150cm, 깊이 15cm 크기로 다양하다. 종류는 용반목 용각류인 울트라사우루스로 추정되며, 초대형 초식공룡으로 키가 40m, 몸무게가 100톤에 달하며, 국내 최대 화석일 것이다"고 밝혔다. 또 김 교수는 "공룡 발자국 화석의 움직임으로 보아 인근에 있는 장자산에서 대규모 화산 분출이 있어 이에 놀란 공룡들이 화산탄을 피해 평야로 피해 도망간 흔적 같다. 이 화석은 자갈과 모래가 섞인 응회암 지질에서 생성됐으며, 그 당시는 이 일대는 바다가 아니라 평야였을 것이다"고 추정했다.

90도

한가로이 나뭇잎 뜯다가 다급히 평야로 달아나던 공룡들의 발자국, 화산 분출 상흔이 아직 남아 바위를 울음 울게 하고 덩치 큰 놈 발자국에도 연기가 난다 목이 길고 몸통이 집채만한 그 옆, 작은 새끼 공룡의 발자국, 여기저기 둥근 웅덩이가 되어 빗물이 고이고 바닷물이 철썩이고

45도

비가 내린다 군사통제구역을 지나 꼬불꼬불한 산길을 적시며 바닷가 바위에 내린다 우산을 움켜쥐고 발자국을 들여다본다 발가락이 없다 두려움으로 깊게 패인 웅덩이를 보며 발자국의 길이를 재느라 줄자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다 겹겹이 쌓인 시간은 한 컷으로 남는다 마이크를 대고 녹음기는 바쁘게 돌아간다 공룡의 울음소리는 빗물로 저장된다 쿵쿵 내딛는 그 슬픈 노랫소리 들린다 푸른 시간이 사라진 자리 모두 모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웃음소리 들린다 구천 만 년 전 목이 긴 공룡의 웃음소리 그 뒤 사라진 발가락의 근황

이기대에서 돌아와 기사를 쓰면서 머릿속엔 온통 공룡 생각뿐이었다.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곳, 여기에 살았던 공룡, 그들의 삶과 사랑은 어떠했을까.



검푸른 빛이 시나브로 어둠을 밀어내며 평야를 눈뜨게 한다. 빗살무늬 햇살이 호수에 가닿으니 물가에 잠자고 있던 나뭇잎들이 가는 숨을 내쉬며 살랑인다. 깃털꼴로 모여 자란 고사리들의 수런대는 소리가 들리고 짙푸른 나무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로 키를 세운다. 물이며 나무며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또다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해의 기운을 받으며 깨어난다.

호숫가에 모여 있는 부지런한 공룡들은 벌써 일어나 긴 목을 뻗어 햇살 머금은 초록의 냄새를 맡는다. 더 높이 있는 초록을 먹기 위해 앞발을 들고 나뭇잎을 훑는 공룡도 있다. 어린 공룡들은 키 작은 속새의 잎을 뜯어 오물오물거린다.

"키순아, 네게서는 향긋한 꽃내가 나."

푸른 이마를 가진 키돌이가 키순이의 목을 부비며 웃는다.

"키돌아, 난 네게서 나는 풀내가 좋아. 멀리서도 그 냄새로 널 찾을 수 있어."

노란 별빛을 닮은 키순이의 눈도 반짝인다.

키순이와 키돌이는 장자호수 공룡마을의 다정한 연인이다. 늘 붙어 다니며 서로 목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물을 마시며 긴 꼬리를 첨벙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밤하늘에 뜬 보름달 빛이 호수를 물들이던 어느 봄날, 키돌이와 키순이는 사랑을 나눈다.

"키순아, 너의 고운 목선을 닮은 예쁜 아기를 낳자."

"그래, 너와 나를 꼭 빼닮은 우리만의 귀여운 아기를 낳고 싶어."

키순이와 키돌이는 숲속으로 들어가 날이 새도록 사랑을 나누었다. 키돌이의 이마는 더 푸르게 빛났고 키순이의 노란 눈빛은 별빛보다 더 영롱했다. 숲속의 꽃과 나무들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주었고 작은 동물들조차도 숨죽이며 이들의 사랑 노래에 귀기울였다.

키순이와 키돌이의 눈에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눈부셨다. 키돌이는 숲가에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긴 목을 내려 입으로 땅을 파고 긴 목을 뻗어 나뭇잎을 뜯고 잔가지를 꺾었다. 곧 태어날 새끼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포근하면서 튼튼한 둥지를 만들었다. 몇 날 며칠을 정성껏 다듬고 매만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키순이는 호수에서 한 입 가득 물을 머금고 와서 키돌이의 푸른 이마를 적셔 주었다.

꿈속 같았다. 푸른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숨이 가쁘고 뭉글뭉글 뱃속의 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순이는 가슴팍에서 울려 나오는 무거운 숨을 토해냈다. 호수에 물결이 일고 나뭇잎과 바람이 흔들렸다. 땅속뿌리들도 가늘게 떨렸다. 가쁜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꼬리에 묵직한 힘이 주어지고 아랫배에 붉은 덩어리 같은 것이 걸려 있는 듯했다. 키순이는 뜨거운 것을 밀어내기 위해 온힘을 모아 숨을 참았다. 그리고 뜨거운 것을 힘껏 쑥 밀어냈다. 끈적이는 붉은 물기와 함께 하얀 알이 둥지 속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키순이는 거친 숨을 고르고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알을 밀어냈다. 하나 둘 셋…. 키돌이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키순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었다. 키순이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우우웅웅 우우웅웅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알을 낳기 시작했다.

아홉 개의 알을 다 낳은 키순이는 축 처진 긴 목을 키돌이의 몸에 기댔다. 키돌이는 가만히 키순이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속삭였다.

"키순아, 정말 훌륭하게 잘 해냈어."

"…….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온몸이 젖은 키순이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키순이와 키돌이는 둥지를 지켰다. 둥지 위를 나뭇잎으로 덮어 감싸고 알을 깨고 새끼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목이 마를 땐 번갈아가며 호숫가로 나가 잠시 목을 축이고는 바로 둥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간간이 알들이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나뭇잎을 들춰보았으며 나뭇잎이 말라 버석이면 다시 촉촉한 나뭇잎으로 갈아주었다.

밤에도 알을 훔치러 누가 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워 사방을 주시하였다. 숲속에 사는 작은 쥐처럼 생긴 놈들도 호시탐탐 알을 노렸고 가끔씩 발톱이 사나운 공룡들도 먹잇감을 구하러 장자호수 마을까지 나타났다. 마을에 공룡 친구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사나운 사냥꾼들도 함부로 덤벼들지는 못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두 달쯤 지났을까. 둥지에서 톡톡거리는 부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키돌이와 키순이는 나뭇잎을 걷어내고 둥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더 넓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새끼들은 자신을 감싸주었던 단단한 알을 깨려고 분투 중이었다. 처음으로 세상에 맞서 살아갈 힘을 스스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알에 작은 금이 가고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깨애액, 깨애액!"

하나둘 새끼들이 큰 나뭇잎 사이로 번지는 햇살을 받으며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키순이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새끼들을 핥아주었다. 새끼는 모두 여섯 마리만 알을 깨고 나왔다. 알을 깨다가 힘이 빠져 포기하고 조용해져 간 녀석도 있고 아예 미동도 하지 않은 녀석도 있었다. 키순이가 둥지에서 새끼들을 돌보고 있을 동안 키돌이는 부드럽고 여린 잎사귀만 골라 부지런히 둥지로 날랐다.

이제 키돌이와 키순이 곁에는 항상 여섯 마리의 새끼들이 따라 다닌다. 키순이와 키돌이처럼 긴 꼬리를 흔들며 호숫가에 나와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꽃에 코를 묻고 향기에 취해 있기도 했다.

"키돌아, 요즘 바람 냄새가 이상해. 여태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와."

어느 날 냄새에 민감한 키순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나도 요즘 뭔가 좀 이상한 게 느껴져. 호수에 큰 물결이 자주 일어서 왜 그런 건지, 불안한 생각이 자꾸 들었거든."

키돌이는 푸른 이마를 찌푸리며 목을 길게 뻗어 먼 데 산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비늘모양의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고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때 갑자기 콰쾅! 폭발음이 들렸다. 하늘에 붉은 불기운이 번쩍하며 번졌다. 뒤이어 시커먼 바윗덩이 같은 구름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호숫가에서 한가로이 잎을 뜯고 있던 공룡들은 놀란 가슴으로 웅웅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다시 한 번 하늘을 쪼갤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불덩이들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버렸고 공룡들은 쿵쾅거리며 내달렸다.

키돌이와 키순이도 놀란 새끼들과 평야로 내달렸다. 키순이는 새끼들이 뒤처지지 않게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키돌이는 날아오는 돌덩이와 불덩이가 새끼들을 덮치지 않게 긴 꼬리를 휘두르며 온몸으로 막아내며 달렸다. 새끼 한 마리가 넘어졌다. 키돌이는 새끼를 일으켜 세우려고 긴 목을 늘어트렸다. 그때 잿빛 먼지가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온 평야를 덮쳐버렸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평야를 울리는 쿵쾅거리는 소리와 서로를 찾아 헤매는 애타는 부르짖음만 들릴 뿐.

그들은 여기에 살았다. 너른 대지의 품에서 서로 사랑하고 새끼를 기르며 대자연의 부분 부분들로 한데 어울려 살았다. 그들은 아직도 여기에 살아 있다. 우리 몸 속에 작은 점 하나로, 삼십억 년의 나이테를 두른 점 하나로, 아직도 지금 여기에서 진화 중이다.

■ 약력

● 2000년 '다층' 시 부문 신인상 당선
● 현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회 회원, '창작공장' 동인
● 현 시전문 계간지 '신생' 편집장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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