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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6> 소설가 배길남 우암동 포부대 길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8-14 22:18:37, 조회 : 2,697, 추천 : 565

- "포부대 특공대, 총공격!"

"야, 여기서 뛰이 내리도 까딱 없데이."

"뭐라하노? 여서 뛰이 내리면 죽는다. 철수, 맞제?"

"그래, 각도로 치면 20도도 안 된다!"

성칠이 한마디 하자 종도와 철수가 어깃장을 놓았다. 그러자 성칠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병욱이 니가 포기하면 나도 안 간다."

종도와 철수도 내 입을 주목했다. 난 고개를 쭉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계단식 논과 밭들로 가득 차 있던 언덕이 포클레인에 파헤쳐져 절벽이 되어 있었다. 파헤쳐진 땅에는 새로운 학교가 들어선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 학교의 친구들도 내 곁에 선 친구들도 저 언덕처럼 파헤쳐져 헤어질 것이었다. 언덕의 흙은 누렇고 붉었다. 가뭄이라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지만 분명 바위나 돌 따위는 없는 경사였다. 철수가 얘기한 20도보다는 훨씬 완만한 30도쯤 되어 보였다. 저 멀리 감만동 부두에는 말로만 듣던 미국 항공모함이 정박해 있었다.

"우짤낀데?"

종도와 철수가 동시에 묻자마자 난 고개를 원상복구시키며 외쳤다.

"전부 다 총공격!"

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성칠이 종도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슬쩍 밀었다.

"어, 어? 어! 성칠이 이 개새끼야아아아~!"

종도가 장렬하게 선봉대로 뛰어내리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철수가 스스로 자폭했다.

"조, 종도 행님아~!"

킬킬대던 성칠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우와아~!'소리치고는 20도 내지 30도의 절벽 밑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나도 숨을 크게 내쉬고 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중력이 뛰는 발보다 빠른 것을 느낄 때 나는 넘어졌고 경사를 뒹굴뒹굴 굴러버렸다. 그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옷 다 베릿다. 그란데…, 절라 재밌다!'

그녀를 만난 것은 임시로 수업을 맡게 된 한 강좌에서였다. 수업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고 가진 뒤풀이에서 우린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었다. 갈맷길 취재차 여러 곳을 다니던 나는 '답사 가는데 같이 갈래요?'라는 작업 멘트로 데이트 약속을 잡기에 성공했다. 우암동과 대연동을 연결하는 포부대 언덕길에서 사진을 찍을 때 그녀는 "아직도 이 문방구가 그대로 있네"하며 신기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었다. 그녀가 우암동 포부대 근처의 신연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우연의 일치에 나는 기분 좋은 예감에 사로잡혔었다. 산뜻하게 조성된 '우암동 도시 숲'에서 포부대를 거쳐 신연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길은 왼쪽의 오륙도를 시작으로 새로 건설하고 있는 북항대교와 영도, 그리고 오른쪽 끝의 감천항까지 부산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길이었다. 우린 자연스레 신연초등학교로 향했다. 어릴 적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골목길이 우리를 왠지 설레게 만들었다.

"아세요? 우리 학교에 비가 오면 운동장에 물길이 관 모양처럼 패인다고 했어요. 그래서 학교 자리가 공동묘지 자리였다고…. 훗!"

"어? 아닌데? 우암동도 문현동 벽화 마을처럼 무덤이 곳곳에 있긴 해도 여기는 공동묘지 자리 아니에요. 확실한데?"

"어떻게 장담해요?"

"여기 지을 때 내가 확실히 지켜봤으니까…. 후훗!"

종도의 수다와 성칠의 커다란 웃음, 철수의 울먹거림이 떠올라 또 한 번 빙긋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그날 나는 내 꿈을 처음으로 말했던 것 같다.

"너거 이 자슥들! 여기서 뭐하노?"

공사장 아저씨의 호통에 도망치다 우르르 무너지는 흙무더기에 우린 또 한 번 나뒹굴었고, 철수가 인질로 잡히는 바람에 우린 모두 아저씨에게 연행되어 나무로 만든 창고에 연금되었었다.

"성칠이 이 새끼, 니 때문이다. 이 쌍쌍바야!"

창고 문을 흔들던 종도가 성칠을 노려보았다.

"욕하지 마라. 탈출하면 된다."

"어떻게?"

"우짜기는? 저게 삽 보이제? 흙바닥이 맨들맨들 하니까 땅을 파는 기다."

질질 짜고 있던 철수와 손톱을 물어뜯던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칠을 바라보았다.

"전부 포기할 기가? 학교로 넘어가가 퇴학당해도 나는 모른다."

"빠, 빨리 파자! 행님아, 뭐하노? 삽 갖고 온나!"

어느새 삽을 들었는지 종도는 벌써 삽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우린 제법 진지했고 탈출 의지가 굳건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치고는 제법 깊게 땅을 팠던 걸로 기억한다.

"아따, 별종들이네. 그 자슥들! 그거 판다고 도망치겠나? 껄껄껄. 여기 위험하니까 앞으론 오지 마라이."

땅굴 프로젝트는 20분 뒤 문을 열어준 아저씨의 한 마디에 무산되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그 순진한 치열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왜냐하면 무모한 듯해도 포기 못할 싸움을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때 땅굴을 파던 것처럼….

삽질을 하고 문틈으로 망을 보며 부산한 가운데 성칠이 물었었다.

"병욱아, 니는 꿈이 뭐고?"

내가 무언가 대답하려는데 종도가 답을 가로챘다.

"내는 MBC 이종도 선수처럼 야구 선수가 될 기다. 철수 니는 과학자 맞제? 성칠이 니는?"

"내는 선장이 될 기다. 저기 항공모함 선장."

입만 우물거리던 내가 파놓은 흙을 치우는데 철수가 나를 가리켰다.

"행님아,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 박사라니까? 그란데 병욱이 행님 말 할라는데 행님 땜에 말 못했다 아이가?"

세 명이 또 한 번 나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망설이던 내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나는 있다 아이가…."

"그래, 지금 하는 일이 소설가라구요?"

"예, 예에…."

"내가 이런 말 한다고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딸 가진 부모 입장은 다 그런 거니까. 서른아홉이면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데 소설가 말고 다른 일은 하는 게 없어요? 낼 모레면 마흔인데 기반이 있어야지. 저축은 얼마나…."

목이 말라왔지만 탁자 앞의 차를 마실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는 자리였다. 이미 반대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들려왔었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자리였다.

"학원 강사를 10년 정도 했었습니다. 앞으로 먹고 사는 기술은 익히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아, 그러니까 제 저축은…."

내 입에선 생각과 다른 말들이 나열되어 갔다. 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저는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전 충분히 행복하고 저와 함께 할 사람도 행복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장편 소설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고, 원고료는 적지만 작년보다 더욱 활발히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제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분명…'

분명…, 나는 분명 이런 말은 꺼내지도 못했었다.

"친구가 이번에 결혼하는데 호텔에서 한대. 그런데 있잖아…, 나도 여잔가 봐. SNS에 커플 반지 사진을 올렸는데…."

"왜? 부러워? 그게 도대체 얼만데?"

"아니다. 오빠 또 과민 반응한다."

"내가 무슨 과민 반응? 도대체 그런 거나 올려서 돈 자랑이나 하는 게…. 그게 무슨 삶의 목표라도 되는 양…!"

난 어느새 해선 안 될 말들을 뱉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가 젖어갔다.

"있잖아, 오빠. 나도 이제 지치나봐. 오빠가 화내는 이런 모습도 무섭고…. 얼마 전 다른 친구한테 오빠 이야기를 했는데,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소설가라고 했어. 그런데 걔가 픽 웃더라고. 요즘 세상에 글만 써서 어떻게 사냐고. 난 나대로 얼마나 화가 나던지 몰라. 그런데 이런 이야기하면 오빠는 또 아파할거고. 난 식구고 친구고 자꾸 잃어가는 거 같은데…. 난 나대로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날 결국 그녀를 달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가슴이 갑갑했다. 집이 있는 우암동으로 향하던 중 문득 포부대의 전경을 떠올렸다. 내가 처음으로 내 꿈을 말했던 곳, 처음으로 그녀와의 인연을 시작했던 곳…. 나는 그 곳으로 다시 올라갔다.

"… 가가 되고 싶다."

내 말이 끝나자 성칠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는 벌써 알고 있었다 아이가? 병욱이 집에 갔을 때 우주선 소설 써놓은 거 살짝 봤는데 뎁따 재밌더라."

"와아~! 진짜가? 니 그라믄 나중에 책도 내고 그라는기가? 나도 보이도."

"아, 아이다. 성칠이가 그냥 띄우는 기다."

얼굴이 벌게지는데 구덩이 밑에 있던 철수가 외쳤다.

"행님아, 소설 쓰고 그라믄 내 박사 되고 나서 위인전도 써 줄 거제?"

"새끼야, 니 죽어야 위인전 쓰는 거다. 빨리 죽고 싶나?"

"아이다! 살아서도 위대한 박사 되면 위인전 쓴다. 병욱이 행님아. 맞제? 멋도 모르면서!"

그때 성칠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철수 멋쟁이 아이가? 흐흐흐. 병욱아, 오늘 이야기도 다음에 꼭 써라. 포부대 특공대!"

포부대에서 바라보이는 부두의 전경을 보며 나는 그 옛날의 추억을 또 한 번 끄집어내었다. 친구들은 내 꿈을 듣고 당장이라도 소설가가 된 양 부러워하고 즐거워했었다. 나는 어쩌면 그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의 꿈들은 모두 이루어졌을까? 그 친구들은 신연초등학교가 완공되고 모두 내가 있던 연포초등학교를 떠나갔었다. 이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 그때 그 친구들…. 온종일 머릿속을 괴롭히던 고민이 서서히 가라앉아 갔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분명 멋지고 대단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발밑으로 펼쳐진 세상에다 대고 그 뜨거움을 꺼내 던졌다.

"나는 소설가다아!"

"나 이병욱은 최고의 소설을 쓰고 잘 묵고 잘 살거다아~"

"싸앙! 글 써서 장가도 가고 좋은 일도 많이 할 거다아~"

눈물이 약간 고일 만치 감동적인 선언이었지만 언덕 바로 밑 집에서 나의 외침에 즉각 대답을 해왔다.

"거 알아서 쓰고, 제발 좀 조용히 합시다. 신고할 거요!"

나처럼 포부대 언덕에서 고함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전경이 호연지기를 키우기 충분하니까…. 하지만 그 상황에 호연지기를 더 내세울 수는 없는 법이다. 얼굴이 벌게진 나는 도망치듯 포부대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뛰다 보니 가슴이 더 후련해졌다. 어느새 나는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전부 다 총공격!"


■ 약력
●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사라지는 것들'로 등단
● 현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장
●'부산데일리 훌랄라 기획부' 등 다수 작품 발표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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