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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7> 소설가 이미욱 '증산공원 가는 길'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8-21 10:32:52, 조회 : 2,720, 추천 : 681

- 희생된 이름들의 넋이 이 돌성을 허물게 하소서

바다는 시퍼런 날을 세우고 출렁이는 파도로 수없이 허공을 베며 숨을 쉬는 듯하다. 멀리 뿌연 안개가 걷히고 어스름한 여명 속에서 생(生)의 알을 입에 문 태수가 눈을 떴다. 가마니 속에 웅크린 몸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허리가 쑤시고 어깨가 결리고 다리가 뻑적지근하고 손목이 저려왔다. 몸은 천근만근으로 땅속으로 꺼져 들어갈 것만 같았다. 태수 혼자만이 앓는 몸살은 아니었다. 이슬이 내려앉은 움 속에 누워있는 사람들 모두 앓는 고질병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태수는 소나무의 성긴 가지 사이로 바다를 보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에 태수는 눈을 감았다.

달빛이 밝아 낮과 같은 밤, 부산진성의 앞바다는 왜선으로 뒤덮여 있다. 왜군은 상륙과 동시에 공격한다. 횃불에 마을이 불타오르자 비명과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왜군의 도끼가 성문을 파괴하자 활과 창칼을 든 조선군은 왜검과 조총을 든 왜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모든 군민이 죽음으로써 항전한다. 왜군의 총탄을 맞은 정발 장군이 전사하자 성은 한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함락한다. 왜군은 부산진성을 허물어버리고 그 터에 본국과 왕래하는 전략기지로 왜성을 쌓기 시작한다.

"으으으음…."

태수 주위에 놓인 가마니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끙끙 앓은 신음으로 살아있음을 알리는 그들은 포로였다. 임란에서 살아남은 죄로 왜군에게 붙잡힌 조선인이었다. 끝내 생을 놓지 못한 그들의 삶은 끔찍한 형벌과도 같았다. 그들은 전선의 전면에서 화살받이가 되거나 왜성 축조의 부역군이 되었다. 태수를 비롯한 움 속의 포로들은 후자였다.

왜군의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돌 쌓는 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아이고, 아이고…."

가마니 속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곡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고된 노동과 온갖 학대에 시달리는 아우성이었다.

"아이고, 오늘은 얼마나 많은 돌을 나르고 쌓아야 하루가 저물려나."

왜군의 발길질에 혹이 턱에 달린 박 영감이 수건을 챙겨 들며 말했다.

태수는 하늘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눈을 뜨면 돌을 쌓고 눈을 감으면 돌이 떠오르는 날을 얼마나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얼마나 더 많은 돌을 쌓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여름,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태수는 생각했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절뚝거리는 태수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돌로 성을 쌓는 일은 죽을 만큼 힘든 고역이었다. 산에서 깨어낸 돌은 치석소에서 석성의 용도에 맞게 규격화 했다. 다듬어진 돌은 소가 이끄는 수레와 사람이 끄는 수레를 이용해 축성 현장으로 운반됐다. 동글하게, 둥글넓적하게, 네모반듯하게 단장을 한 돌들을 성터로 옮기고 횡대로 종대로 쌓는 것은 축성에 동원된 포로들의 몫이었다. 포로들은 떨어져도 꿰맬 수 없는 맨발로 증산을 오르고 내리며 돌을 날랐다.

"어데서 자꾸 돌을 가져오는지…. 조선 땅에 돌이 모조리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욱할 때마다 머리를 돌에 박아서 이마에 피멍이 든 정두가 툴툴거렸다.

"참말로요. 바다가 보이고 요새가 될 만하면 곳이면 죄다 왜성을 쌓을 거라고 안 합디까?"

입을 달싹거리던 영배가 발로 흙을 차며 말했다.

"어이구! 저놈의 원수를 우짜꼬!"

태수가 지그시 깨문 입술에 피가 새어나왔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으로 퍼졌다.

"아이라, 원수는 제 끈질긴 목숨인기라."

박 영감의 말에 다들 숨이 끊긴 듯 조용해졌다. 태수가 피 섞인 침을 뱉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 뜨거웠다.

"니는 이 돌이 무슨 떡으로 보이노?"

정두가 차가운 정적을 깨고 너스레를 떨었다. 돌이 떡인 줄 알고 깨물어서 이가 부러진 적이 있는 영배였다.

"뭐락카노?!"

영배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시루떡, 콩떡, 인절미, 백설기?"

씩씩거리는 영배의 반응이 재미있는 듯 정두가 짓궂게 달라붙었다.

"아니라카이 그라네."

영배는 손사래를 치며 신경질을 냈다.

"고마 해라! 떡 얘기하니까 배고프다이가."

박 영감이 타박하듯 말했다. 뱃가죽이 등짝에 붙어버릴 듯한 배고픔이 오죽했으면 켜켜이 쌓아 놓은 돌이 떡으로 보였을까. 박 영감은 삐쩍 마른 영배의 몸피에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

포로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숨을 쉬는 한, 돌을 나르고 쌓아야 했다. 굼벵이처럼 몸이 느리거나 비실거리면 왜군의 채찍질과 발길질이 무자비하게 몰아쳤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돌을 만지는 태수의 손은 불에 덴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몸이 까맣게 익어가는 고통에 피와 땀과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태수는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살아남은 죄로 받는 형벌이었다.

태수는 죽지 못한 괴로움으로 돌을 쌓았다. 조선의 땅에서 조선인이 조선의 돌로 쌓았지만 결코 조선의 성은 아니었다. 곡선을 그리듯 기울어진 성벽의 정상에 누각을 짓는 공격 위주의 왜성이었다.

"이보소. 무슨 일을 죽자고 덤비듯 하는교? 고마 하고 점심이나 먹으러 가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안 하요?"

박 영감이 땀범벅이 된 얼굴을 수건으로 훔치며 말했다. 태수는 대답 대신 박 영감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호각소리를 듣지 못한 태수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기에 지친 포로들이 번개 장터로 달려가듯 걸어가고 있었다. 태수는 절뚝거리며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향해 갔다.

"절름발이는 매일 밥도 안 먹고 어딜 저리 가는교?"

해골 같은 얼굴을 한 영배가 말했다.

"낸들 아나. 니도 밥 먹지 말고 함 따라 가보던가."

박 영감이 태수의 그림자에서 시선을 거두며 답했다.

"죽음으로 산 고통을 없애려다가 실패한 사람의 발길을 어찌 알겠능교."

정두의 말에 다들 더위에 입술이 말라붙었는지 잠시 말을 잃었다.

태수는 바다로 가는 돌담 아래에 앉아있었다. 마을을 에두른 외곽성이 장성의 키만큼 쌓여 있었다. 태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태수는 돌담 아래에 묻어놓은 주먹만 한 돌과 동강난 쇠젓가락을 파냈다. 손에 움켜쥔 주먹만 한 돌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순심."

태수는 며칠 동안 수백 번을 새기고 새긴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이름을 애타게 불렀던 날이 떠올랐다.

태수는 성을 빠져나와 왜군의 검과 조총을 피해 마을로 달려간다. 집은 불에 타고 있다. 태수는 정신없이 아내를 찾아다닌다. 부엌에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아내는 불룩한 배를 솥뚜껑으로 가리고 있다.

"순심아, 순심아! 정신 차려라, 순심아! 순심아!"

태수는 울부짖듯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아내의 묽고 따뜻한 피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 태수는 그을음과 눈물로 얼룩진 아내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미안… 우리… 아기를… 못… 지켜… 정말… 미안… 함니더."

아내의 숨이 점점 꺼져간다. 솥뚜껑으로 아기를 지키려고 했던 아내의 모습에 태수는 눈물이 솟구친다.

"순심아, 순심아! 눈 좀 떠 보그라! 순심아! 순심아!"

목이 쉬도록 애타게 부르지만 아내는 대답이 없다.

아무리 불러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이름. 무성한 기억만 남기고 가버린 이름. 그 이름들을 새긴 돌은 열 개가 족히 넘었다. 돌들은 모두 성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태수는 외곽성의 틈을 찾아 아내의 이름을 새긴 돌을 끼워 넣었다. 아내의 이름도 왜성 일부가 되었다.

'죽은 이름의 넋이 돌성을 허물게 하소서.'

태수는 굳은살과 찢어지고 베여 상처투성이가 된 두 손을 모아 빌었다.

태수는 돌무더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쨍, 강한 빛줄기가 단단하고 매끈한 돌 하나를 비추었다. 태수는 그 조막만 한 돌을 주워 손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내가 지키려고 했던 아기의 이름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은성!"

수줍고도 다정한 목소리였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온 이름에 태수는 적잖이 놀랐다. 차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속으로 아끼기만 했던 이름이었다.

태수는 돌무더기의 그늘에 앉아 손에 쥔 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순심의 눈을 닮은 여자아이였을까. 내 코를 닮은 남자아이였을까. 태수는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이름의 얼굴을 상상했다. 잠시 후, 쇠젓가락을 잡은 태수는 아기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새기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태수를 향해 춤추듯 날아들었다. 나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수는 돌에 이름을 새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비가 돌 속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돌을 빠져나왔다. 태수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태수는 나비를 알아본 것일까.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혀도 견뎌내며 날개를 힘껏 펼치기 위해 태어난 아기를, 오랜 허물을 벗고 드넓은 창공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나비를, 높새바람에도 파르르한 떨림을 멈추지 않는 날갯짓을.

태수는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나비를 쫓아갔다. 절뚝거리는 다리에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나비만 보며 가던 태수의 몸이 한순간 오른쪽으로 쏠렸다. 와르르, 태수의 머리 위로 무거운 돌비가 내렸다. 돌비에 흠뻑 젖은 태수가 쓰러졌다.

"돌성이 무너진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햇빛에 돌들이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태수는 하늘로 날아가는 고운 나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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