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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8> 소설가 이정임 '소원을 말해봐'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8-31 16:26:42, 조회 : 2,618, 추천 : 575

- 10년을 넘어 다시 그 곳에서 우린 또 어떤 소원을 말할까…

이번 수능에 좋은 점수 받게 해주세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

엄마가 쌍꺼풀 수술 허락하게 해주세요.

내일…, 우리 학교 불나게 해주세요.

철도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 보림극장에서 현대백화점으로 넘어가는 좁은 길에 그 육교가 있었다. 그곳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 넷은 그곳에서 소원을 빌었다. 그때의 우리-제이, 나, 유, 고-는 절박했다. 변비와 폭식, 운동부족이 만든 몸뚱이 때문에 교복치마는 후크를 채우지 않아도 터지기 직전이었다. IMF(국제구제금융) 때문에 국공립대에 가야한다는 부채감에 시달렸지만 모의고사 점수는 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고3이었고, 당장 내일부터 중간고사를 봐야 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지나가는 기차의 지붕을 내려다보며 우리는 입을 달싹이며 소원을 중얼거렸다. 그러다 신(神)이 저 기차 소음 때문에 내 소원을 못 들으면 어쩌나 싶어, 결국 주문을 외듯 악을 쓰기 시작했다. 외모, 성적, 미래를 향한 주술이랄까. 어디선가 비릿한 쇠 냄새가 풍겨왔다. 1999년 9월 26일 일요일.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제이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 지낸 15년 중에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으로 입을 닫아버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이불과 그릇 세트를 사러 진시장에 왔었다. 10월이면 제이와 나, 둘 다 시집을 가기 때문이다. 어쩌다 결혼 날짜를 같은 날로 받았는데, 서로의 결혼식엔 갈 수가 없지만 결혼 준비를 같이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갈수록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혼집, 예단, 예물, 신랑의 스펙까지 모든 것이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비교되기 시작하자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졌고, 그것이 불편함으로 이어졌다.

방금도 이불 때문에 서로 마음을 다쳤다. 나의 경우, 이불은 엄마가 직접 준비하겠다며 백화점에서 손수 장만하셨다. 제이는 전에 봐 둔 이불을 오늘 확인하고 예약하기 위해 진시장을 찾는다고 했다. 나도 그릇을 둘러볼 요량으로 제이와 함께 하겠다고 길을 나섰다. 제이는 침대용 이불세트, 겨울용 침구세트, 여름용 이불 등을 모두 합해 45만 원에 계약했다. 제이에게 '정말 싸게 샀다. 난 백화점이라 그런지 너보다 두 배는 더 든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것이 제이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제이는 그 가격도 허영이나 사치가 아닌지 수십 번 고민을 하다 결정했을 텐데, 나는 바보같이 제이의 알뜰을 칭찬한답시고 나불거렸다. 하지만 화가 난 제이의 기분을 신경 쓰느라 어쩔 줄 몰라 하던 나는 결국, '잘한 일을 진심으로 칭찬했는데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어 기분이 상했다.

피곤을 핑계로 한복을 둘러보기로 했던 것은 취소하고 둘 다 진시장을 나와 버렸다. 이 기분이라면 한복집에서도 서로 선택한 한복의 가격 때문에 신경전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집으로 가버리고 싶었지만 제이의 기분을 더욱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묵묵히 다음 장소를 향해 걸었다.

우리는 부지런히 보림극장 쪽으로 걸었다. 제이와 나는 보림극장 근처에 있는 여고를 다녔다. 학교 근처의 분식집 떡볶이, 튀김 맛을 잊지 못했던 우리는 오늘 꼭 그곳에 들리자, 약속했다. 어쩌면 너무 허기가 져서 기분이 가라앉은 것일 수도 있다. 맛 있는 것을 먹으면 분위기가 한결 나아지겠지. 나는 제이 쪽으로 슬쩍 붙어 걸었다.

1999년 9월. 추석 연휴에 공부가 될 리 없었다. 학교에 모여 시험공부를 하기로 했던 우리는 학교 앞 햄버거 가게로 나갔다. 우리 넷은 보림극장 1층에 있는 맥도날드에 앉아 후렌치 후라이를 잘근잘근 씹으며 신세를 한탄했다. 아이 썅, 일주일이나 됐는데 똥이 안 나온다. 넣기는 이렇게 넣는데 나오는 게 없으니 미치겠다. 에이, 드럽구로. 변비나 공부나 똑같네. 암만 글자를 머릿속에 넣어도 시험 때는 나오는 게 없잖아. 고 3인 것도 서러운데 연휴 끝나고 바로 시험이라니 심하다. 어쨌거나 큰일이다. 공부 하나도 못 해서. 못한 게 아니고 안한 거지. 근데 중간고사는 둘째 치고 수능이나 제대로 치겠나. …우린 진심으로 학교에 불이 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망하자. 그런 오기였을까. 맥도날드를 나와 보림극장 간판을 심각하게 올려다보던 우리는 잠시 후, 매표소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였다.

보세요. 나이가 되잖아요.

안 돼.

인상 좋게 생긴 아저씨는 생긴 것 답지 않게 깐깐하게 나왔다. 극장의 '관계자'가 두 명이나 나와 우리를 타이르고, 말리고, 훈계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 명 이상 모이면 눈에 뵈는 것 없다는 여고생, 그것도 고3이 아니었던가?

에이, 민증이 되는데요, 법이 우리를 허락하는데요, 아저씨?

어허, 그 학생들 참!

삼성극장, 삼일극장, 보림극장.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그때, 이 극장들은 오래된 삼류극장이었다. 허름한 건물, 에로영화 간판, 2본 동시상영. 우리는 등하교마다 그 극장을 지나쳤지만 그 극장에 들어가 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림극장이 '서너 달 지난' 최신 영화를 3천 원에 상영하기 시작하면서 학교 아이들은 종종 그 극장을 찾았다. 변태와 동성애자에 대한 소문이 돌았지만 객기에 겁날 것이 없었다.

노랑머리.

그 날 우리 눈에 들어온 간판에는 머리를 노랗게 탈색시킨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선정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그 영화를 꼭 봐야한다고 결론지었다. '18세 이상 관람가'라서 생일이 지난 우리는 나이로는 볼 수 있었지만 학생이라서, 심지어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우리가 다닌 학교는 사복 출입금지여서 휴일이라도 교복을 입고 등교했기 때문이다. 교복 입은 네 명의 '말'만한 처자들을 누가 들여보내줄 수 있겠는가?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고가 외쳤다.

아저씨, 우리도 알 건 다 알아요! 불쌍한 고3인데 한번만 들여보내 주세요! 스트레스 좀 풀게요! 안 그럼 저, 학교에 불 지를지도 몰라요!

매표소에 있던 아저씨 세 명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알긴… 개뿔. 호기롭게 입장했으나 우리는 곧 약한 모습을 보였다. 어둡고 낡은 극장에 있는 것들-사람, 의자, 한잔 50원짜리 자판기 커피- 모두 안전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자세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넷은 서로를 붙잡고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극장 풍경은 가관이었다. 이가 거의 없는 노인의 입 속처럼 좌석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누워있거나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 맥주 등을 가져 와서 마시고 있었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아베크족도 있었다.

가장 압권은 우리 바로 앞에 앉은 뚱뚱한 아저씨였다. 그는 엉덩이를 빼고 눕듯이 앉아서 정력강화기구인지 뭔지 모를 요상한 물건을 손으로 조물딱거렸다. 자리를 옮길까 했지만 교복 입은 모습이 튈까봐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유가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가자고 사정했다. 고와 나는 어떻게 들어온 자린데 나가냐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걱정도 잠시, 영화가 시작되고 우리는 곧 화면에 몰입했다. 알몸으로 헐떡이는 남녀를 앞에 두고 우리는 민망해서 서로의 표정을 살필 수도 없었다. 책상과 한 몸이 되어 있어야 할 고3이 남의 몸을 들여다보는 비행을 저지른다는 묘한 쾌감으로 상기된 채 그저 앞만, 앞, 만, 바라봤다.

그때였다. 으하하하하하하! 켈켈켈켈!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리 앞에 앉은 문제의 사내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는 온몸을 흔들어가며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어댔다. 손에 그 물건을 든 채였다. 사람들이 그를 흘끔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우리가 발견되었다. 교복을 입은 네 명의 여고생. 우리는 당황했다. 나가야 하나. 하지만 그들은 금세 고개를 돌리고 화면을 응시했다. 매 장면마다 남녀의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 우리도 곧 화면에 집중했다. 진지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앞자리 사내는 웃어댔고, 그렇게 웃어서, 우리는 자주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영화보기가 수월한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심각한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십년이 훌쩍 넘었으니 어느 정도 변했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시장에서 학교로 넘어가는 길은 철도를 건너가게 되어 있었다.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오른편은 T여고 학생들 길, 왼편은 K남고 학생들 길로 나뉘어져 있었다. 파란 교복 행렬과 보라색 교복 행렬이 서행하다가 기차가 곧 지나간다는 종소리가 울리면, 지각을 면하기 위해 달리는 아이들로 행렬의 흐름이 빨라지곤 했다.

그 기찻길이 막혀 있었다. 대신 지하차도와 지하통로를 통해 그 길을 건너야 했다. 극장들의 자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영화 '친구'를 찍은 장소로 유명해진 삼일극장 자리에는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O양의 함정', '산딸기', '뽕' 등 우리가 암기하던 영화 간판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드나들던 학교 정문은 후문으로 변해 있었고, 단골 분식집은 그대로 남았지만 국밥으로 업종이 변경되어 있었다. 떡볶이 따위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맥도날드는 마트로 변했고 '노랑머리'를 봤던 보림극장은 없어지고 입구가 굳게 닫혀 있었다.

어리둥절한 채로 '옛' 보림극장 앞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데 제이가 시원한 깡통 음료를 사왔다. 우리도 이렇게 변했는데 여기라고 안변할 리가 없지. 조방 앞으로 건너가서 국밥이나 사 먹자. 배고파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우리는 길을 건너서 육교 위에 섰다. 그날 영화를 보고 나온 우리는 세기말적 분위기에 휩싸여 육교에 올랐다. 우리의 청춘이 풍요롭기를 간절하게 빌었지만 그때 꿈꾼 화려한 미래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능은 죽을 쑤고, 서울에 있는 대학은커녕 대학 문턱도 겨우 넘은 처지고, 성형수술은 못했고, 학교에 불은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십대는 '절박'이 '일상'이 되어 소원을 빌 새도 없이 구질구질하고 시시하게 지나가버렸다.

기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여섯 개 철도의 평행한 갈색 선들이 앞뒤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제이가 말했다. 니가 큰 부족함 없이 살림 준비하는 게 질투 났다. 미안하다. 나도 말했다. 니처럼 스스로 벌어서 알뜰하게 준비하는 게 맞지. 자격지심에 말을 모나게 했다. 미안하다.

제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가면 무슨 소원을 빌어야할까. 탁한 공기 속에서 철도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앞으로는 어떤 것이 절박해지는 것일까. 세상 모든 일이 다 절박한데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뭘 꼽아야할까. 그저 어리둥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으니, 그 모든 것 다 우습다고 유쾌하게 웃어넘길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야 할까. 제이와 나는 조용히 고민했다. 뜨거운 햇살이 우리 머리 위를 비추었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 못해 어리둥절한 고3으로 돌아가 있었다. 2012년 8월, 여름 냄새가 났다.

■ 약력
● 1981년 부산 출생
●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등단
● 부산소설가협회 사무차장
● 단편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 '반짝반짝, 빛나는' 등 발표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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