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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1> 소설가 이미욱 '송도 볼레길 위의 안부'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9-22 00:44:10, 조회 : 2,969, 추천 : 594

- 낯선 이가 달려와 부축한다
- 닮았다. 떠났던 아이 아빠와…

낮달같이 창백한 얼굴을 한 금순이 송도 앞바다에 섰다. 바다는 짙은 잿빛이었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잿빛 구름에 물든 것일까. 하늘과 바다를 가득 채운 잿빛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답답하게 보였다. 파도는 비단결같이 부드럽게 바위를 끌어안듯 잔잔했다. 바다 내음이 넘실거렸다.

금순은 아침 뉴스에서 곧 태풍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태풍의 위험반원인 오른쪽에 놓이면서 강풍과 함께 최고 300mm 이상의 호우가 예상됩니다. …오늘 낮 기온이 32도까지 오르겠고 한때 소나기 소식이 있습니다."

기상 캐스터의 말에 금순은 태풍 피해에 대비하는 농부처럼 이내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제수를 장만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매년 첫 태풍 소식이 들리면 금순은 태풍 마중이라도 가듯 제수를 준비해서 송도 앞바다를 찾았다.

금순은 광활한 바다를 보며 깎아놓은 듯한 해안 절벽의 해안길을 걸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에 무척 후덥지근했다. 초대형 태풍 예보에 홀로 나서서 걷는 바닷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쪽진 백발을 한 금순이 철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내렸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 사이로 곧 땀이 배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두 손에 달린 보따리는 밑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송도 해안 볼레길 아래로 잘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았다. 평평한 검은 바위가 눈에 띄었다. 금순은 갯바위로 내려갔다.

금순은 바위 위에 앉아 야무지게 묶어놓은 보따리를 풀었다.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을 차례로 꺼냈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닭강정까지 차려 놓은 뒤에 초를 켜고 향을 피웠다. 부드럽던 파도가 바람이 불면서 높아져 갔다.

송우야.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생마늘을 씹은 듯 입안이 아려왔다. 금순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욱,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금순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금순은 그저 망망한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송도해수욕장, 해수욕장, 해수욕장에 놀러 가자. 엄마!"

월남 파병대에 손을 흔들었던 그해 여름, 아침부터 송우는 목소리를 키웠다. 다섯 살 난 아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태세였다. 금순은 아들의 비위보다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더 쉬운 어린 엄마였다. 해수욕장에 가자고 떼를 쓰는 아들을 보며 금순은 난감했다. 쉬는 날도 아니고 예약한 일본 손님도 있었다. 문득 초대형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생각났다.

"송우야, 무서운 태풍이 오고 있어. 우리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 가자. 엄마 일하러 가야 하잖아."

금순은 예약 손님과의 약속을 깰 수 없는 이유보다 태풍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싫어! 거짓말, 거짓말! 저번에도 다음이라고 했잖아. 싫어! 오늘만! 으앙, 으앙."

송우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송우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짜증이 솟구쳤다.

"그치지 못해! 사내가 어디서 울어!"

금순은 저도 모르게 송우의 등짝을 후려쳤다.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내야 할 화를 송우에게 내버렸다. 송우는 억울하다는 듯 더 크게 울었다.

"송우 엄마야! 무슨 일이고? 애 죽겄다."

옆집에 사는 영산댁이 송우의 울음에 놀라 문도 두드리지 않고 들어왔다. 금순이 일하는 동안 송우를 봐주는 영산댁이었다.

"죄송해요. 오후에 송우랑 해수욕하고 오세요. 잘 부탁해요."

영산댁이 송우의 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순이 집을 나갈 때까지 송우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선 금순은 벌건 손바닥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금순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송림관에 갔다. 여름이면 대목을 맞는 송도에서 제일 유명한 고급 요릿집이었다. 그곳에서 금순은 노래를 했다. 송림관의 규칙에 따라 금순은 기모노를 입었다. 기분이 불편했지만 엔화와 송우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둥근 어깨선과 하얀 목선을 가진 금순은 기모노가 잘 어울렸다.

"야마모토상 오셨다. 낭군님이 오셨는데 버선발로 나오지 않고 뭐하니?"

마담이 금순에게 손님이 온 것을 알려주었다.

"호호호, 어서 오셔요. 야마모토상! 이게 얼마 만이여요. 어떻게 세월을 거꾸로 드셔요. 점점 더 멋져지셔요."

금순의 목소리가 살결을 스칠 듯 애간장을 녹였다. 입이 헤벌어진 야마모토상은 일행과 함께 한 달여 만에 송림관을 찾았다.

두 시간여 만에 교자상을 물린 야마모토 일행은 저녁에 일본으로 돌아간다며 뱃놀이를 청했다. 금순은 두둑하게 받을 엔화에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나섰다. 송우가 좋아하는 닭강정과 자동차 장난감을 사주고 싶었다.

늦은 오후, 일행은 차양을 친 놀잇배에 올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청자의 쪽빛 같은 바다를 만끽했다. 저 멀리 해수욕장은 벌거벗은 몸들로 혼잡했다. 설 전날의 공중목욕탕을 연상케 했다. 금순은 해수욕을 즐기고 있을 송우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야마모토상이 금순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금순의 시선은 송도의 명물인 거북섬을 잇는 구름다리와 케이블카로 향했다. 야마모토상이 노래를 청했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금순은 이미자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무서워요. 못 갈 것 같아요."

금순은 구름다리 앞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흔들거리는 다리를 보며 다리 아래 바다로 빠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다리 아래를 보지 말고 나만 보시오. 그럼 무섭지 않을 거요. 자, 내 손만 꼭 잡아요!"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금순은 믿음직하게 보이는 그의 두툼한 손을 꽉 잡았다. 흔들거리는 구름다리를 건너는 동안 심장이 요동쳤던 이유는 무서움이었을까. 설렘이었을까.

"금순씨, 앞으로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남자가 되도록 하겠소."

거북섬에서 해수욕장 위를 가르는 케이블카 안에서 그가 말했다.

"날씨가 당신 보는 것 마냥 참 좋네요."

금순은 수줍게 화답을 했다. 그날 밤, 그의 뜨거운 입술이 금순은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얼마 후,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거역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연한 뒤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금순은 집을 나왔다. 열여덟이 되던 해였다.

"에리지의 여왕이 부르는 노래보다 더 삼삼하고 이쁘므니다."

노래가 끝내자, 금순에게 눈을 떼지 않던 야마모토상이 말했다.

"노래가 조스므니다. 아, 기분이 정말 조스므니다."

야마모토상의 일행이 박수를 쳤다.

뱃놀이를 마친 금순이 송림관에 들어서자 마담이 울상이 된 얼굴로 맞았다. 영산댁이 화장실 간 사이에 송우가 바다에 빠졌다는 소식이었다. 금순이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송우는 이미 주검이 되어 있었다. 싸늘한 몸을 부둥켜안고서야 금순은 송우의 존재를 새삼 깨달았다.

일을 나갈 즈음이면 금순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송우였다. 온종일 엄마랑 같이 놀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둔 엄마는 때때로 엄마라는 이름을 숨겨야 했고, 아빠 없는 아들을 키우는 게 어렵기만 했다. 누구를 위해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렸는가. 무엇을 위해 아들에게 그리 모질었는가.

무엇보다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었다. 바로 아들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엄마는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금순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는 고통의 날들을 보냈다.

하염없이 철썩이는 파도가 지난 세월을 일으켰다가 잠재웠다. 고요하던 바다에 바람이 불더니 갑자기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금순은 빗물에 젖은 제수를 빠르게 챙겼다. 빗줄기에 옷이 금세 젖어버렸다. 금순이 부랴부랴 짐을 챙겨 일어서는 순간, 현기증이 나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보시오!"

갯바위 옆에서 낚시하고 있던 영감이 달려왔다. 영감은 금순에게 우산을 받치고 안색을 살폈다. 금순이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괜찮소?"

낮고 굵은 음성이 파도를 타고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금순은 흠칫 놀랐다. 영감이 바로 그였다. 금순은 애써 침착하게 다시 그를 보았다. 까만 콩같이 반질반질한 눈이 송우와 닮았다. 몇십 년이 지났어도 그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금순은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으면 하고 바랐다.

"제를 올린 거지요?"

그가 금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금순은 차마 당신 아들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했다.

"여긴, 젊은 날에 사랑했던 여인과 함께 온 곳이오. 일 년에 한 번은 꼭 옵니다. 자꾸만 달아나는 기억을 붙잡는 방법이 이곳을 찾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금순은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 바다가 어룽져 보였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고 있던 이끼 낀 돌이 바닷물에 씻기는 듯했다. 빗줄기가 잦아들고 있었다.

"곧 태풍이 오겠지요."

금순이 세찬 바람에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말했다.

"태풍이 지나가면 곧 가을이 오겠지요."

그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붉게 물드는 잿빛 하늘 위로 날아갔다.

■ 약력
●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등단
● 작품 '분실신고' 외
● 부산작가회의 사무차장, '작가와사회' 편집장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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