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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2> 소설가 배길남 '지옥의 가덕도 데이트'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09-25 17:25:57, 조회 : 2,693, 추천 : 562

- 짜증내고 다투고 화해하고…
- 아주 그냥 영화를 찍습니다

'옛날이 무조건 좋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훼손당하는 것을 탓할 뿐입니다.'

차를 운전하던 이병욱 씨는 라디오의 멘트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탔던 감독처럼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니임은~'을 흥얼거려 봅니다. 그의 차가 넘고 있는 가덕도 연대봉의 고개가 아리랑 고개라도 되는 양 그는 좀 슬픕니다.

색다른 데이트 코스를 찾아 몇날 며칠을 부심했던 이병욱 씨.

'영도보다 더 큰 부산시 최남단의 섬.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있는 신비의 섬.'

가덕도! 예전에 몇 번 가 봤던 가덕도는 마치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곳 같았습니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참고삼아 하루를 책임질 데이트 코스를 열심히 짰습니다. 그리고 닷새 만에 완성한 작전은 무척 훌륭했습니다.

먼저 가덕도의 선창마을로 가는 배를 타고 가서 눌차마을의 갈대와 이국적 정취를 한 시간 정도 즐긴 후, 배를 타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거가대교로 연결되는 가덕대교를 타고 대항마을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맛집을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해산물 정식을 잘한다는 한 식당을 들릅니다. 그 후, 그 마을에 있다는 천가초등학교 대항분교에 들러 시골 분교의 낭만에 젖어봅니다. 일본군 포진지는 지리를 잘 몰라 일단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거기까지 안가더라도 가덕도 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는 이 멋진 프로젝트를 블링블링하게 뒷받침해줄 것입니다.

"완벽하군! 우하하하!"

모든 계획을 완성했던 이병욱 씨의 웃음소리는 그의 자취방 창문을 넘어 힘차게 날아올랐었습니다.

"배고파! 점심 먹고 가면 안 돼?"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나온 그녀는 차에 타자마자 한마디 합니다.

"자기야, 오늘 멋진 코스로 계획 알차게 잡아놨으니까 조금만 참아. 점심은 해산물 정식! 목적지는 가덕도!"

이병욱 씨의 설레는 목소리에 반해 그녀의 표정은 심드렁하기 그지없습니다.

"나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해. 그냥 영화나 보러 가면 안 돼?"

슬금슬금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병욱 씨는 해맑은 웃음으로 그녀를 대합니다.

"하하하! 자기는 농담도 잘하지? 나만 믿으세요!"

차는 달려 달려 부산 신항으로 향합니다. 가덕도 선창과 눌차마을에서의 추억이 살짝 살아납니다. 이병욱 씨는 고개를 저어 쓴 추억을 날리고는 곁에 앉은 그녀를 살짝 곁눈질 합니다. 그녀는 역시 이쁩니다! 그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두두둥! 이것은 이병욱 씨의 뒤통수에 울려 퍼지는 충격음입니다.

"뭐? 배, 배편이 없어졌다고?"

"오빠, 뭐 다 알아봤다면서? 배편 없어진지 2년이 다 돼 가구만 무슨 소리하는데?"

스마트폰으로 가덕도를 검색하던 그녀의 말에 이병욱 씨의 눈앞이 하얘지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덕대교가 생겨나며 손님이 격감해 2009년 6월 신항~선창마을 간의 배편이 폐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인터넷을 검색했건만 왜 이것만 쏙 빼놓고 몰랐을까요? 예전에 갔던 길만 믿고 아무 생각 없었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그라믄 밥 먹으로 바로 가자."

차는 거가대교와 연결된 가덕대교로 급선회합니다. 주말이라 차가 은근 막힙니다. 그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처량하게 바라보던 그녀가 한숨을 쉬더니 스마트폰을 들이밉니다.

"오빠 지금 간다는 해산물 정식집 혹시 여기가?"

그녀가 내민 스마트폰의 화면엔 목적지인 대항마을의 식당 화면이 나옵니다.

"진짜 배고파. 근데 여기 예약 미리 했나? 여기 예약 안하면 못 먹는다는데?"

"당근 해놨지!"

에어컨을 켰는데도 초조한 이병욱 씨의 이마엔 땀이 줄줄 흐릅니다. 예약시간에 맞추기 위해 달려야 합니다. 배고플 때 가장 예민한 그녀가 초절정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엉뚱하게 헤매느라 시간은 벌써 1시가 넘어갑니다.

차는 드디어 가덕대교를 지나 가덕도로 들어왔습니다. 천성마을을 지나 꾸불꾸불한 연대봉 고갯길을 열심히 넘어갑니다.

"야아! 저기, 저기 봐라. 저기가 거제도다. 부산하고 얼마나 가깝노? 멋지제? 풍경 좋제?"

"으응…. 멋지네."

그녀는 아직 심드렁하지만 멋진 풍경에 마음이 좀 누그러진 것 같습니다. 길의 정상에 서자 오른편 바다 풍경에 거가대교로 연결되는 휴게소와 해저터널 입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왼편으론 연대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꽤나 많습니다.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빵빵!'하는 경적이 울립니다.

"오빠, 운전 조심해!"

꾸불꾸불한 길에 왜 이리 차가 많이 다니는지…. 이병욱 씨는 바짝 긴장하고 운전대를 잡습니다. 한적했던 가덕도는 이제 외부 사람들로 붐비는 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덕을 넘자 대항 마을과 대항 새바지의 갈림길 표지판이 보입니다.

"오빠, 새바지가 뭐야?"

"어…, 억새밭이 많다고 새를 붙이가 새바지란 말도 있고, 동쪽으로 바람이나 파도를 받아낸다고 새바지라고 한다네. 새는 동쪽을 뜻한단다."

"와, 오빠 공부 좀 했는데?"

"뭘 또? 하하! 밥 묵고 이따가 한 번 가보자."

그녀의 칭찬에 우쭐해진 이병욱 씨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맛있는 식사와 시골분교, 그리고 아름다운 부두가 데이트를 빛내줄 것입니다.

"예? 손님이 많아가 기다려야 된다고요?"

두두둥! 충격음이 또 울려 퍼집니다. 맛집으로 너무 알려졌는지 식당 앞은 차들로 북새통입니다. 그녀가 서서히 폭발하기 직전의 표정을 짓습니다.

"자기야, 쪼매 기다리야 된단다. 우짜지?"

"아아아아~!"

그녀가 차에 다시 타자마자 고함을 크게 지르더니 갑자기 미소를 짓습니다.

"오빠, 나 괜찮아, 대신 밥 먹기 전에 그 초등학교 분교에 먼저 가. 오빠 어차피 거기서 사진 찍어야 된다며? 거기 이름이 뭐라고?"

"처, 천가 초등학교 대항 분교…."

그녀가 네비게이션에 학교 이름을 세팅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녀의 인내심 게이지는 경고 수위를 넘어섰을 겁니다. 이병욱 씨는 저 친절한 미소가 더더욱 공포스럽습니다. 분교 운동장의 낭만 따위는 이제 포기해야 합니다. 그들의 차가 대항 부둣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분교는 근처에 있을 것인데 '차량진입금지' 푯말이 붙어있는 언덕길이 나타났습니다. 뒷차에 쫓긴 두 사람은 산으로 산으로 올라갑니다.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부산의 최남단 가덕도 외양포입니다. 일본군 포진지가 그대로 있는 곳이며, 아직 군사지역에 묶여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곳입니다. 러일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섬 주민들을 쫓아내고 일본군 사령부를 지었다는 아픈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이곳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내가 피곤하다고 말했지? 그래도 오빠 이해하려고 노력했잖아? 그런데 왜 내 탓이야? 네가 짜증만 안냈어도 이렇게까지 안됐다 아이가? 좀 여유 가지고 좋은 공기 마시고 하자는 게 뭐 잘못됐나? 그러면 준비를 확실히 하던지! 뭐? 내, 내가 준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웃기네! 뭐, 뭐라고?

뛰쳐나가고 잡으러 가고 때리고 맞고 맞은 놈은 가만있는데 때린 분이 엉엉 울고 내가 잘못했다 하고 다신 안 그런다 하고 몸부림치고 끌어안고 화해하고…. 아주 그냥 영화를 찍습니다.

가왁 가와악~! 더덕이 많이 나서 가덕도라고 불렸던 이 섬에서 대대손손 잘 살아온 까마귀님이 그들의 머리 위로 룰루랄라 날아갑니다.

해산물 정식, 드디어 찾아낸 천가초등학교 대항분교의 아련한 모습, 아름다운 대항 포구의 풍경…. 이병욱 씨의 데이트 코스는 드디어 꽃을 피웁니다. 언제 싸웠냐는 듯 행복한 표정의 두 연인은 이제 첫 코스에서 마지막으로 변경된 가덕도 눌차마을을 향해 달립니다. 그곳의 유명한 술도가에서 가덕도 막걸리를 몇 병 사가지고 돌아갈 예정입니다.

드디어 도착한 눌차마을! 그러나 이병욱 씨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입니다. 마을 오른쪽 끝으로 펼쳐졌던 갈대밭은 온데 간데 사라졌고, 휑한 공사 현장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그가 좋아했던 돌담집도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나마 다른 돌담과 기와 밑으로 보이던 제비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긴 합니다.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뭔가 잃어버린 듯한 가덕도의 모습이 씁쓸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이병욱 씨는 술도가를 찾습니다. 그곳마저 없어졌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 어딘가 술도가가 있었는데…."

예전 배가 다니던 때에 찾았던 가덕도 눌차마을. 꾸불꾸불한 골목길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술도가는 우유와 같이 진한 막걸리를 팔고 있었습니다. '술도가 다음 골목으로 이전', 한참동안 헤매던 둘의 눈에 시멘트 벽에 적힌 페인트 글씨가 보입니다. 기쁜 마음에 술도가의 대문을 열자 등산객 몇몇이 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습니다. 낯익은 주인 할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휴, 여기로 이사 오신 것도 모르고 한참 찾았습니다. 할아버지도 잘 계십니까?"

"영감은 2년 전에 세상 떴어. 인자 내가 혼자 막걸리 담가서 장사 한다 아이가."

막걸리와 그릇을 내어놓으시던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앞사람의 쟁반을 치웁니다. 아까부터 들던 섭섭한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을 겁니다.

"아이고, 이전에 술 묵다가 만난 부산 총각 아닌가베?"

고개를 들자 마루 한 켠에 앉은 동네 할아버지 한 명이 이병욱 씨를 보고 아는 체 합니다. 낯익은 얼굴에 이병욱 씨는 환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아, 이전에 가덕도 양파가 몸에 좋다면서 안주로 주시던…. 안녕하셨습니까?"

"아이고, 나는 여전히 양파 캐고 있지, 하하. 잘 지냈는교? 가덕도에 간만에 오능구만."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킵니다.

"그란데 옆에 있는 아가씨는 그때 그 아가씨 맞지요? 아가씨, 기억나는교? 전에 내가 줬던 양파 맛있었지요? 하하하!"

이병욱 씨의 옆구리에 난데없는 통증이 전해져옵니다. 공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빠, 저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 하는데? 딴 여자랑 여기 왔었나?"

"아니, 아니…. 할아버지가 착각을…, 하하하! 그때 여동생이랑…, 하하!"

이병욱 씨의 이마에 다시 식은땀이 줄줄 흐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변했다 해도 가덕도 사람들은 그 모습 그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가 저물어 갑니다. 그리고 이병욱 씨 커플의 가덕도 데이트도 서서히 마무리 되어 갑니다.

여러분도 아름다운 부산 최대의 섬 가덕도를 한 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 이 커플처럼 싸울까 걱정된다고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알기로는 두 사람은 또 화해했고, 또 한 번 가덕도로 데이트 간다며 자랑질을 한답니다. 그만치 좋긴 좋았던 거죠. 이번엔 차로 가지 않고 버스로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하하. 저도 애인이 생기면 꼭 한 번 가볼까 하는 상큼한 생각이 드는군요.

■ 약력

●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사라지는 것들'로 등단
● 현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장
●'부산데일리 훌랄라 기획부' 등 다수 작품 발표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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