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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4> 시인 김요아킴- '성지곡 원숭이의 401일 간의 자유'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10-19 16:55:42, 조회 : 2,871, 추천 : 538

- 땅거미가 성지곡을 쓰다듬자
- 철창 너머 빽빽한 숲으로
- 우린 탈출을 시도했다


나의 이름은 치타, 세상에 눈 뜬지 만 8년 된 히말라야산 암컷 원숭이-
딸깍, 오늘도 어김없이 철창의 자물쇠를 여는 사육사의 손길이 노련하다. 수년 째 눈 앞으로 펼쳐진 익숙한 풍경, 그는 다소 굽은 등과 가느다란 긴 팔로 무리들이 먹어치운 먹이통을 재빠르게 갈며 힐끔힐끔 머릿수를 헤아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땅을 탕탕 두드리는 그의 막대기 소리가 또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이미 몇몇 무리들은 알아서 나뭇가지 위로 몸을 날리며 잔뜩 긴장한 눈망울을 떨어뜨렸고, 나는 불쾌한 듯 천천히 그의 곁을 서성거렸다. 그러면서 그가 청소를 끝내고 다시 문 쪽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였다. 물론 자물쇠는 잠기지 않은 채 문고리에 걸쳐져 있을 뿐이다.



지난주부터 몇몇 무리들과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한 모의를 했었다.






  






창살 너머로 펼쳐진 백양산의 빽빽한 숲과 수원지에 비치는 푸른 하늘이 마냥 그리웠고, 그보단 매일 찾아오는 관람객의 신기한 듯 쳐다보는 눈빛과 던져주는 먹이로 환산되는 쇼 같은 일상의 반복이 너무 싫었다. 게다가 무리 중 서열 1위로 등장한 일본산 수컷 원숭이의 독재와 그의 추종자들이 벌이는 횡포가 이제 도를 넘은 것이 기폭제가 되어 암컷 몇몇과 서열 싸움에서 밀려난 수컷들 모두 스무 남짓 모여 비밀리에 탈출 계획을 짜곤 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사육사 서 씨의 방심한 틈을 노려 그가 열고 들어온 철창문으로 나가는 방법이 유일했다. 먹이통을 치우려 들어올 때 종종 자물쇠를 채우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노려야 한다는 나의 발언에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한 것은 최근 감기로 인해 고생하는 서 씨의 몸 상태였다. 거사일은 그믐인 내일, 관람객이 모두 돌아가고 내가 그 자물쇠를 열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떠안았다.



문이 열렸다.



땅거미가 천천히 성지곡에서 뿜어내는 고요를 쓰다듬을 무렵, 전광석화 같은 탈출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역시 베테랑 사육사답게 서 씨의 뒷심도 만만찮았다. 미처 5명의 동지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철창문은 급하게 닫혔고, 순간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눈빛을 마지막으로 자유를 얻었다. 드디어 거대한 철창 밖 세상과 마주쳐야 할 무리는 나를 포함해 모두 15명, 동물원 입구를 뛰쳐나와 성지곡 수원지로 가는 입구, 맨 처음으로 만난 건 박목월 시인의 시비(詩碑)였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전문



비로소 우리는 누구의 간섭 없이 내 발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나그네가 되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감상에 빠져들기엔 급하게 우리를 뒤쫓을 추격자들이 염려스러웠고, 우선 숲 속으로 은신해야 했다. 촘촘하지만 곧게 뻗은 편백나무 사이로 내달려 나뭇가지 위로 뛰어올라 잽싸게 날아올랐지만 손발의 접착력은 낯설었다. 몇몇은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애써 삼킨 몇몇의 비명은 골짜기를 에워싸기도 했다. 등줄기로 짙은 땀줄기가 흐르고 철창 안에서 길들여진 체력은 이내 바닥을 드러내었다. 처음 보는 세상, 우리들 앞으론 수많은 길이 놓여져 있었고 순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멈칫거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일단은 수원지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올랐고 결국 만남의 숲에 모두 집결했다. 다소 불안한 웅성거림을 뒤로 하고 모두들 약속이라 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만만찮습니다. 이제 각자의 길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모여 다니면 쉽게 발각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이미 동물원에서는 우리를 잡으려 포위망을 좁혀 올 것입니다. 의지할 수 있는 무리들끼리 나눠 흩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같이 그믐달이 뜨는 날이면 반드시 이곳에서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합시다."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단단한 결의를 다지는 함성이 터져 나왔고, 모두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모였다.



한 달 뒤 이곳에서 보자던 약속을 지킨 무리는 열 명 남짓 되어 보였다. 오지 않은 나머지 무리들의 소식은 이내 모인 자들의 입을 통해 들려왔다. 문제는 배고픔이었다. 늘 사육사가 혹은 관람객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어져온 습성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 깨끗이 판정패 당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등산로 주변에 사람들이 먹다버린 음식물을 주워 먹기도 하였지만 결국 굶주린 배는 제 발로 동물원에 들어가게끔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어렵더라도 이를 이겨내자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헤어졌지만, 다음 그믐날에 만난 숫자는 이미 절반가량으로 줄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육사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추격자들의 포획에 몇몇은 희생되어 끌려갔고 일부는 스스로 끌려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나도 이미 냄새를 맡은 사냥개들의 움직임이 심상찮음을 느꼈고, 수원지 아래쪽에서 본 요산(樂山)선생의 문학비에 새겨진 문구를 문득 다시 한 번 새기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사람답게 살아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

각자 돌아서는 무리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결국 혼자가 되었다.



만남의 숲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날, 희붐한 새벽이 어둠을 털어내는 시간까지 나타나는 무리는 아무도 없었다. 두려움이 순간 온몸의 털을 빳빳하게 세웠고, 밀려드는 막막함에 주저앉은 풀잎의 이슬이 잠시 차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요 없는 살들은 행방을 감추고 근육만 남은 팔 다리와 이미 익숙해진 배고픔, 그리고 이 손으로 자유를 쟁취했다는 자존감은 끝까지 나의 오기를 발동시켰고, 이제 이 길에 남은 이는 나 혼자 뿐이라는 것을 직시했다. 쉽지 않은 앞으로의 여정, 그 출구를 향해 무작정 뛰어야만 했다.

한편 사육사 서 씨는 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 했다. 이미 항복을 선언한 몇몇 동지들을 앞세워 내가 자주 다니는 길을 매복하여 덮치기도 했고, 특히 짝짓기 기간 동안 한껏 암내를 풍기는 나를 유혹하기 위해 2살 연하인 일본산 원숭이 용팔이를 내보내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기도 했다. 점점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은 줄어들고 낮에는 나무 꼭대기에 숨어 지내다 밤이면 살그머니 내려와 버려진 쥐꼬리만한 음식을 두고 도둑고양이와 혈전을 벌여야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축제기간 길거리에 전시한 누군가의 시(詩)를 읽으며 잠시 가족들이 있는 일상의 평범한 행복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혼자일 뿐이다.



퇴근길을 서성이는 잔바람이

바르르 내 왼손의 까만 봉지를 흔든다

불어터질 듯 오뎅 한 점

피어나는 김처럼 훔쳐내고는

분필가루 삼키며 온종일 쥐어 짜낸

별 즐겁지 않은 노동을 생각해 보다

그래도 몇몇 녀석들 웃음을 떠올리며

현관문 열면 있어야 할 식구들을 위해

막 말아 올린 김밥 두 줄 건네받는다



그 봉지 속 비디오 테잎, 연신

오늘밤 같이 보낼 것을 요구하며

어서 가자 떼를 쓰고

내일을 기약하며, 남은 종지의 국물

깨끗이 비워버린다

삼십 촉 백열등 아래

꺼지지 않고 서 있는 내 그림자

여전히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이 작은 뜨거움 때문일까



산다는 건 지독히 행복하다



-'집으로 가는 길' 전문



마을로 내려와야 했다.



산 속에서의 생활을 더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비록 위험이 뒤따르더라도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모든 것이 더 낯설게 다가왔다. 단단한 콘크리트 집 옥상을 건너뛰다 미끄러져 화분을 떨어뜨리고, 남의 집 장독 뚜껑도 깼다. 그 소리에 동네 개들은 일제히 고함을 질러댔고, 이보다 더 내가 놀라 전신주 위로 후다닥 숨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결국 나의 편이 되어 주었다. 대강의 마을 지리가 한눈에 들어왔고 적당하게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을 배짱도 생겨났다. 골목에서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쳤을 땐 오버 액션과 함께 고함을 질러야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요령도 터득하였다. 그리고 어린 애들이 손에 쥐고 있는 과자는 내가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간식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평소 나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짖어대는 개는 밤에 묶여 있는 틈을 타 반드시 손바닥으로 생채기를 내며 복수를 하곤 했다. 결국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나를 잡기 위한 별의별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수면제를 넣은 미끼로 나를 유인하기도 하고, 입으로 훅 부는 마취 총을 만들어 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그물망을 유유히 피해 다니는 나는 어느새 '신창원 원숭이'란 이름으로 불려지며 각종 신문과 뉴스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제 그 자유를 접을 때가 된 모양이다.

나의 이름은 치타, 히말라야산 암컷 원숭이-

'사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탈출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바라는 것과는 달리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 내가 살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자유는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이미 출구를 잃어버린 자유는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 그래,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잡혀 주자.'

이런 생각이 들 무렵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사육사를 비롯한 대대적인 포획꾼들이 방송사의 카메라를 들이대며 나를 잡기 위한 생중계에 들어갔다. 처음엔 요리조리 피하다가 결국 마음을 내려놓았다. 평소 자주 부엌을 드나들던 김 씨네 집 담벼락에서 마침내 401일 간 꿈꾸던 나의 자유는 마감되었다. TV 화면으로 포승줄에 묶인 한 원숭이가 전국으로 전파를 타고, 순간 고개를 숙인 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죄인과 다름 아니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히말라야, 나의 고향을 떠올려 보았다.

■ 약력
● 본명: 김재홍
● 2003년 계간 '시의나라' 및 2010년 계간 '문학청춘' 신인상
● 시집 '가야산 호랑이' '어느 시낭송' '왼손잡이 투수'
● 한국작가회의, 부산작가회의 회원. 현재 부산 경원고 교사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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