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Home | Sitemap | Contact us
ID:
PW:

자유롭게 회원님들의 작품을 올려주세요.
시, 소설, 희곡, 평론 등 각 장르별로 카데고리가 나뉘어져 있으니 글을 쓰실 때 카테고리를 선택하신 후 쓰시면 됩니다.
이 공간은 회원님들께서만 글을 올리실 수 있으니 불편하시더라도 회원가입 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욕설, 비방, 광고의 글은 올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전체 | 시 (84) | 소설 (15) | 평론 (1) | 희곡 (0) | 추모시 (25)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5> 소설가 최은순 '길은 흐르고 있었다'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10-29 16:36:49, 조회 : 2,661, 추천 : 595

- 면과 리, 마음을 가두는 경계없이
- 또 다른 길들을 열어주고 있었다


산을 에워싸고 도는 숲길은 깊고도 험했다. 어디쯤일까, 언제쯤이면 만덕 고개가 나타날까. 영류는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부리로 연신 닦아냈다. 하나의 산등성이를 오를 때마다 이제는 보이겠지 했던 고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산등이로 향하는 좁은 골짜기로 길이 내려앉을 때마다 영류의 마음도 한숨으로 내려앉았다. 심장 소리가 방망치질 해댔고, 이내 먹먹해진 영류의 귀에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류의 심장 소리는 열에 들뜬 몸을 스쳐 지나는 바람조차 몰아내고 있었다.

숲길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영류의 눈을 찔렀다. 영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끝을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에움길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동래부 관청이 있는 수안에서부터 십 리가 넘는 산길을 걸었지만 만덕 고개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오시(午時)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조만간 해가 질 테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산새를 벗어나야 하는데….

허나, 찾을 수나 있을까. 찾으려 하면 할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해가 지기 전에, 아니 오늘이 가기 전에, 아니 죽음과도 같은 밤이 오기 전에 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




  






도화서 화공인 영류가 수령으로 부임한 김형기를 따라 동래부에 온 것은 십 년 전이었다. 당시의 조정에서는 지도를 제작함에 있어 도화서의 화공을 해당 지역에 임명하여 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영류는 한동안 동래부 관내 곳곳을 다니며 전란 이전과 이후의 실상과 그것을 지리지의 내용과 대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영류는 전란으로 피폐해진 관내의 사정을 소상히 기록해 나갔다. 조정에서는 동래부의 군사 진영인 부산진을 포함한 금정진, 좌수영 등을 정비해 군사요새로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두모포왜관을 설치해 대일 무역의 요충지로서의 면모를 다지기에 바빴다. 이를 위한 대책으로 조정에서는 종전의 군현을 새롭게 정비하고자 했다. 전란으로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대외적으로 국가의 경계를 명확히 하여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명목이었다. 동래부 지역을 잘 아는 토착 지주들을 향리로 임명하였고, 그들은 조정에서 내려온 수령과 함께 동래부를 정비해나가기 시작했다.

소실되거나 파괴된 동헌과 객사, 창고, 사찰 등이 몇 년에 걸쳐 복구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변화된 도성의 지도를 그리는 것 또한 영류의 임무였다. 그러나 영류가 동래부 수령으로부터 받은 명은 다른 것이었다. 영류가 그려야 할 지도는 종전의 지리지의 부도로서 그려지던 지도와는 다른 것이었는데, 수령 김형기는 지리지의 내용을 포함하여 지도에 그리기 어려운 조세와 호구를 함께 그릴 것을 영류에게 명했다.

―지리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네가 그려야 할 것은 성내에 존재하는 호구를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네. 그것도 아주 소상히 말이지.

―어째서 그러한지요?

―국가 정비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니, 빠른 시일 내에 조정에 보고를 올려야 할 게야.

영류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시험을 통과해 차비대령화원으로 선발된, 실력 면에서 뛰어난 화공이었다. 그러나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업이었지만 국가 행사에 동원되었을 정도로 막중한 임무에 비해 실상 사회적 지위는 비교적 낮았다. 그의 아버지는 관리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만 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 나름대로의 화풍을 살리며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끝내 관청 소속의 업무 보조 역할이 다였던 아버지도, 그의 가문도 늘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영류에게 차비대령화원이 되는 것은 출세 길에 오르는 것에 다름없었다. 관직과 녹봉면에서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주요요직의 벼슬아치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연이 닿아 혼인이라도 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자신의 가문의 힘이 커질 수 있기를 영류는 바랐다. 그러나 그런 영류의 속내를 알기라도 하듯, 명을 내리는 김형기의 얼굴이, 화공 따위와 국사를 논할 내가 아니라는 멸시가 영류에게로 날아들었다. 아버지를 닮아 타고난 화풍으로 뛰어난 화가가 되기를 한때는 소망했었지만,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초라한 삶을 닮은 것 같아 영류는 한스러웠다.

영류는 성내를 밤낮으로 두루 다니며 관찰하였다. 그리고 지도를 그리기 위한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동래부에 존재하는 소읍성의 크기와 거기에 사는 호수별 인구수와 곡물, 각 면의 위치까지 상세하게 기록해 나갔다. 도성의 지도가 완성되어 갈 때 쯤, 전란 직후의 처참했던 동래부의 모습도 차차 안정이 되었고, 조정에서 부임한 수령의 말처럼 그 옛날의 평화로웠던 동래부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영류는 생각했다.

영류는 한동안 완성된 지리지를 바탕으로 지도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해안에 진을 표시하고 산을 독립된 봉우리로 표현했다. 네 개의 방위를 설정하고, 그 방위 안에 각 읍성과 면과 리를 표시하고, 각 단위로 관아와 호수와 곡물 등을 그리고 채색해 나갔다.

그러나 영류의 지도가 완성되어 가던 것과는 달리 관내에서는 전에 없던 소란이 벌어지고는 했다. 소읍성에서 발생한 사건과 그에 연루된 백성들의 죄를 묻는 일이 많았고, 그 죄에 대한 벌을 가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사소하게는 도둑질에서 강간과 살인까지 일어나고 있었고 관아에서는 이를 엄중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밤이 되면 관아 어느 한 쪽에서는 고문으로 인한 비명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기도 했고, 아이와 여인의 울음소리가 담을 넘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관문 밖에서 갑자기 날아드는 돌에 놀라기도 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관문에 칠해놓은 변 냄새로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지기도 했다.



지도 완성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영류는 다시 한 번 도성을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자신이 그린 지도의 내용대로 해안지대로 설치된 진과 성벽도 그대로였고, 방위에 따른 읍성과 면, 리와 그에 따른 호수와 논밭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래하는 이들로 분주했던 성내가 조금은 한산해진 느낌이었다.

동래부와 경계에 있는 양산부로 가기 위해 백양산으로 향하던 중 영류는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요즘 도성 내에 무슨 일이라도 있소? 왜 이리 들고 나는 사람들이 없소?

백양산 입구, 다 쓰러져가는 움막에서 웅크린 채 앉아 있던 노인의 눈은 마치 빛을 잃은 소경처럼 멍했다. 그 눈이 마치 죽음처럼 너무 암담해서 영류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 이 양반, 그걸 몰라서 묻나. 나라에서 자꾸만 역을 주 싸니까 어데 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모두들 도망 안 갔는교.

산 송장 같았던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의외였다. 절망마저도 잊어버린 듯 했지만 노인의 눈빛에서는 한편으로 원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란 직후 조정의 지휘 하에서 이루어진 도성 내 정비에도 불구하고 도성을 떠나는 유망인들은 이전보다 더 많아지고 있었다. 중앙에서 내려온 수령 김형기는 그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조정의 위계질서를 따르는 대신 지방 부호 세력과 결탁했고, 그리하여 군역과 신역 등의 부역을 도성 내 사람들에게 떠넘겼다고 했다. 역경지, 대아상입지 등으로 인해 생긴 성과물을 백성들에게 돌리지 않고 저들끼리 빼앗았다고도 했다.

―어디로 갔습니까?

―내사 모르지러. 근데, 마…, 저 짜 만덕고개라고 글로 갔을지도 모르지러. 우짜면 글로 갔을지도 모르지러. 거기 다 모디있을끼라.

―만덕 고개요?

―그렇지, 만덕 고개지러. 만덕 고개지러.

오직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을까. 산도 바람도 나무도, 이 모두가 완강하게 영류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영류는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려 너럭바위 위에 드러누웠다. 차가운 바위 위의 널브러진 몸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꿈이었을까. 심장소리에 먹먹해진 귀가 열리는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만덕 고개는어디요? 영류 자신의 물음이었을까. 이내 저쪽 어딘가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만덕 고개가 어디냐니, 지금 여기가 만덕 고개지러. 영류는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잎들이 소란을 떠는가싶게 몸을 팔랑이더니 가지가 휘적거리고, 이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바람이 옮겨 다니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저렇게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 사이로 흐르는 듯이 이어진 길을 사람들이 드문드문 걸어 오르고 있었다. 영류는 자신이 힘겹게 올랐던 길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너럭바위를 지나 비탈진 길에 올라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 걸었다. 여기가 만덕 고개라고? 찾으려 하면 보이지 않는다더니. 귀가 열리고, 나 아닌 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그제야 길은 제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삶을 구획하는 대읍과 소읍, 면과 리, 마음을 가두는 경계도 없이 길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이십 리 길 그 시작과 끝이 있을 뿐 만덕 고개는 또 다른 길들을 열어주고 있었다. 마치 하늘처럼, 산처럼, 나무처럼, 새처럼, 물처럼, 태초부터 그랬다는 듯이 길은 흐르고 있었다.

■ 약력
● 201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로딩하는 남자' 당선
●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회 회원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분류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25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20> 소설가 배...   부산작가회의 2012/11/28 589 2798
124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9> 소설가 최...   부산작가회의 2012/11/20 531 2693
123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8> 소설가 이...   부산작가회의 2012/11/16 598 2626
122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7> 소설가 이...   부산작가회의 2012/11/08 638 2721
121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6> 시인 이은...   부산작가회의 2012/11/04 676 2833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5> 소설가 최...   부산작가회의 2012/10/29 595 2661
119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4> 시인 김요...   부산작가회의 2012/10/19 538 2871
118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3> 소설가 최...   부산작가회의 2012/10/19 574 2728
117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2> 소설가 배...   부산작가회의 2012/09/25 629 2832
116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1> 소설가 이...   부산작가회의 2012/09/22 558 2845
115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0> 시인 이은...   부산작가회의 2012/09/11 617 2999
114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9> 시인 김요아...   부산작가회의 2012/09/06 609 2814
113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8> 소설가 이정...   부산작가회의 2012/08/31 530 2490
112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7> 소설가 이미...   부산작가회의 2012/08/21 631 2595
111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6> 소설가 배길...   부산작가회의 2012/08/14 565 2697
110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5> 시인 이은주...   부산작가회의 2012/08/10 544 2937
109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4> 소설가 이정...   부산작가회의 2012/07/31 546 2707
108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3> 시인 김요아...   부산작가회의 2012/07/24 653 2799
107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2> 최은순 '달...   부산작가회의 2012/07/24 532 2545
106 소설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 소설가 배길...   부산작가회의 2012/07/11 610 2855
105 추모시  노란 엄마 -강영환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시화...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04 3399
104 추모시  오독 -고명자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30 3316
103 추모시  바람이 넌지시 -김영옥   부산작가회의 2011/05/31 736 3180
102 추모시  다시, 봄날에 -김요아킴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95 3203
101 추모시  비린 세상 -김중일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33 3163
100 추모시  그리운 나라 -김해경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99 3258
99 추모시  그네, 소녀와 광장 -김혜영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99 3269
98 추모시  당신의 나무 -나여경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01 3520
97 추모시  그게 아니데 -류명선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43 3514
96 추모시  거인증후군 -박종인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01 3476
95 추모시  말 혹은 마음 -박성웅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35 3192
94 추모시  바람개비가 있는 풍경 -배옥주   부산작가회의 2011/05/31 715 3371
93 추모시  멀고 먼 지도 -서규정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60 3283
92 추모시  다시 봉하마을 지나며 -송유미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07 4445
91 추모시  사과꽃 창가에 앉아 그대와 밥을 먹다 -송진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28 3225
90 추모시  그리운 그대 -이해웅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53 3333
89 추모시  강의 흐름은 자연의 흐름이다 -임수생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69 3235
88 추모시  황사 특보 -정안나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25 3242
87 추모시  외로움인 게지요 -정의태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36 3362
86 추모시  다시 오월에 -정태규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81 3471
85 추모시  그리운 이에게 -조해훈   부산작가회의 2011/05/31 592 3558
84 추모시  그리운 바보 -지운경   부산작가회의 2011/05/31 650 3468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
Copyright 1996-2017 . All rights reserved.
Tel. 051-806-8562 Fax.051-807-0492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부산지회
후원계좌 : 국민 104302-04-239425 (예금주 서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