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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7> 소설가 이미욱 '물속의 고향-회동수원지'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11-08 22:50:06, 조회 : 2,613, 추천 : 569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7> 소설가 이미욱 '물속의 고향-회동수원지'

물 속에 잠기게 될 고향, 환한 한가위 보름달조차 서럽고 또 서러웠다

(국제신문 2012-11-05)    
  
자태를 뽐내듯 빛나는 보름달을 보며 진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고향에서 보내는 마지막 한가위. 진수는 제 맘과 달리 환한 달을 원망스런 눈길로 쳐다보았다. 어둡기만 한 하늘도 원망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부엉산 중턱에서 진수는 우두커니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사방으로 둘러싼 아홉산, 반듯하게 정리된 논과 밭, 골짜기를 드나드는 백로, 갈대가 어우러진 수풀, 흙냄새와 풀냄새 나는 마을 길. 한눈에 담기는 풍경을 굽어볼수록 날숨만 깊어갔다. 산자락을 타고 불어오는 소슬바람이 몸을 휘감듯 불어왔다. 바람에 풀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삶의 터를 두고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풀벌레가 목청을 높여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밝은 달빛에 눈앞은 캄캄하기만 했다.

희유의 가뭄과 병참 기지정책에 따라 상수도사업을 확장해야 한다. 양수시설을 증설하는 방안으로 회동리 수영강 상류에 제언을 축조하여 거대한 저수지를 형성시킬 계획이다. 이러한 명분으로 일제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고향 산천을 수장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오륜 농민들은 때아닌 날벼락에 혼비백산이 되었다. 일제는 살아온 터를 빼앗고 살아갈 터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농민들은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투쟁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탄압과 잔인함에 울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은 물속에 잠기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진수는 달그림자를 끌며 천천히 마을로 내려왔다. 어귀에 도착하니 이웃 몇몇이 둘러 앉아 있었다. 오봉이 웃으며 손짓을 했다. 진수의 입가에 살며시 웃음이 어렸다. 열일곱의 달력 나이에 비해 정신 나이가 반 토막 난 오봉이었다. 아이들은 바보라고 놀렸지만 소문난 효자였다. 오봉은 품팔이를 하며 홀어미와 함께 살았다.

중추명월이면 사람들은 어귀 마당에 자리를 깔고 술잔을 나누며 기름진 음식을 소비했다. 여느 해 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마을로 이주한 가구로 빈집이 생겨나면서였다. 마을 분위기는 추수가 끝난 들판같이 적막해졌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얘기들은 한결같았다.

강물은 막히고 물은 점점 고여 가겠지. 고향에서 살다가 죽는 게 여한이었는데. 평생 일군 논과 밭을 자식에게 물려주지도 못하다니. 고향과 같이 물속에 묻혀 죽고 싶구나. 한 많은 이 땅에서 고향까지 잃게 되다니. 어디 가서 뭘 먹고 살아야 하는가.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갔다. 진수는 목 안이 부은 것처럼 음식을 넘기기 어려웠다. 며칠째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자리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종헌에게 다가갔다. 종헌은 오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진수 아버지의 친한 벗이었다.

"종헌 아재, 많이 드셨어요?"

진수는 마을 곳곳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할 때마다 종헌을 찾았다.

"먹었지. 술이 소 없는 송편 맛이야."

종헌의 얼굴은 불콰하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 진수는 종헌을 보며 군수물자 생산 공장에 다니는 정대를 생각했다. 정대는 종헌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동기간인 정대를 만난 건 나흘 전 도심에 나가서였다. 정대는 몹시 초췌한 모습이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고집 센 아버지와 농사일을 힘들어하던 정대는 결국 도심으로 나갔다. 종헌은 일제를 위해 일하는 아들을 보려 하지 않았다. 진수는 정대와 헤어지면서 고향이 사라지기 전에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 정대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진수가 정대 얘기를 하려는데 종헌이 빈 술잔을 들었다. 진수는 건강하시라는 추석 인사를 건네며 술잔을 채웠다. 종헌은 마지못해 웃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가만히 잔을 비웠다.

"진수야, 오줌 싼 애들이 키를 쓰고 이웃집에서 얻어 와야 하는 게 무엇이고?"

종헌이 허공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물었다.

"소금이지요."

"맞지, 소금이지. 그 맛이 어떤가?"

달빛을 담은 종헌의 눈이 반짝였다. 소금의 맛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짭니다."

진수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지, 내 그 짠맛이 눈물 맛인 줄 오늘에서야 알았다."

진수는 가슴이 저릿했다. 소리의 파장이 퍼지듯 뭉근한 통증을 느꼈다. 종헌은 달빛이 뿌려진 지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환갑을 넘긴 종헌이 홀로 만월을 맞을 수 있는 건 고향에 살고 있어서였다. 아련한 어머니의 젖내음 같은 고향은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추석이라니. 서럽고 또 서러웠다.

진수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짠맛에 대해 생각하며 마을을 걸었다. 길가에서 우는 풀벌레 소리가 정겨웠다. 귀를 기울이자, 동무들과 딱지를 치고 팽이를 돌리고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진수는 돌담을 넘으려는 듯 골목으로 뻗은 감나무 가지를 지났다. 빈집 앞의 화단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수놓은 듯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바람에 흔들렸다. 가녀린 몸은 꺾이는 법이 없었다.

"진수 형님!"

진수는 놀란 표정으로 오봉을 보았다. 오봉은 진수가 오기 전부터 있었다는 듯 떡하니 서 있었다.

"오봉이가 보살피고 있는 꽃들이다."

진수는 잘했다며 오봉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진수의 걸음은 집 안마당 한쪽에 있는 우물가로 향했다. 오봉이 진수의 걸음을 쫓아갔다. 우물을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깊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세수했다. 머릿속까지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수 형님아, 어른들이 자꾸 오봉이 걱정을 한다. 잘 먹고 사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오봉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 지었다.

"오봉아."

진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눈길을 아래로 떨구자 돌멩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진수는 우물에 돌멩이를 던졌다. 물이 튀는 소리를 기다렸다.

"돌멩이가 우물에 빠졌다."

오봉이가 명랑하게 말했다.

"맞다. 이제 집도 논도 밭도 다 물에 빠지게 된다."

오봉은 입을 비죽 내밀고 눈을 껌뻑거렸다.

"오봉아, 얼마 안 있으면 고향도 물에 빠진다. 그러니 우리는 살 곳을 찾아서 다른 마을로 가야 한다."

진수는 오봉과 눈을 맞추며 차근차근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많이 못 걷는다."

오봉의 어깨가 축 늘어지는 것을 진수는 보았다.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던 오봉이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진수는 오봉의 증상을 짐짓 걱정했다. 빈집에서 나가 오봉의 어머니에게 가야 했다. 진수가 오봉의 팔을 잡자 오봉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우물 속에서 돌멩이를 찾으면 고향도 찾을 수 있는가?"

오봉의 흐릿한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진수는 말도 안 되는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오봉이는 헤엄 잘 친다."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는 오봉을 데리고 진수는 빈집을 나왔다.

진수는 오봉을 집에 바래다주고 마을 뒤에 있는 팽나무로 향했다. 팽나무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마을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다. 진수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팽나무 '당산 할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팽나무가 눈에 들어오자 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팽나무 아래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정대였다.

"삼 년만이야. 마을은 여전하네. 아버지는 약주를 많이 하셨더군."

정대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얼굴이 안돼 보이네. 몸 생각도 해야지."

진수는 살 빠진 정대의 모습을 염려했다.

"며칠 전에 일을 그만두었네."

정대는 어쩌면 탈출했다는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농사보다 더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릴 찾아 고향을 떠났다. 단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들어간 일제 공장이었다. 하지만 노예처럼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으로 혹사당했다. 홀로 낯선 도심을 헤매다 보면 막다른 길이 눈앞을 가렸다. 암담한 현실과도 같은 길에서 물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그랬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진수 자신에게 묻는 말이기도 했다.

"날이 밝으면 아버지와 같이 아침을 먹을 생각이네. 새 터를 찾아야지."

아버지와 함께하기로 결단을 내린 정대의 모습은 강인해 보였다. 정대는 진수의 의중을 묻는 표정으로 보았다.

"도심으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네."

진수는 상기된 표정으로 발밑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곳은 추운 곳이더군.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정대는 목이 메는 듯했다. 밤공기를 가르고 귀뚜라미가 울었다. 처량하고 애절한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람 살려!"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놀란 두 사람은 횃불이 모여드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물이 있는 빈집이었다. 우물 앞에서 오봉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오봉아! 그만 눈을 떠 보거라. 어미를 이렇게 놀래면 안 되는 법이다. 오봉아! 오봉아!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좀 살려주소. 서방 잡아먹은 년 새끼까지 잡아먹을 순 없는 법이요. 제발, 내 새끼 좀 살려주소. 고향도 죽는 날 받아놓고…. 나는 무슨 팔자를 타고 나서 이런 천벌을 받는 거요."

오봉 어머니의 오열에 마을 사람들은 숙연해졌다. 목청을 뽑아 대성통곡을 한다 해도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절통한 일이 다 있는가."

누군가의 탄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진수는 순간 오봉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런데 우물 속에서 돌멩이를 찾으면 고향도 찾을 수 있는가?' '오봉이는 헤엄 잘 친다.'

진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오봉은 돌멩이를 찾으러 고향을 찾으러 우물에 뛰어든 것이다. 진수의 눈이 뜨거워졌다. 생존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자신이 부끄러웠다. 진수는 자신의 뿌리인 고향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다. 눈에 맺힌 눈물의 무게에 어깨가 무거웠다.

■ 약력
●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등단
● 작품 '분실신고' 외
● 부산작가회의 사무차장, '작가와사회' 편집장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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