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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18> 소설가 이정임 '온천천-자연과 인공 사이'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11-16 14:39:26, 조회 : 2,320, 추천 : 467

- 폐지 줍는 할매는 닳고닳은 무릎을 찬 온천천에 담그고

어, 하고 그녀는 가던 길을 멈췄다. 방금 지나간 자전거 경적 소리에 놀란 뒤였다. 손에는 수레가 쥐어져 있었고 수레에는 과자 박스와 광고지 몇 장이 들어있었다. 폐지를 주우러 나온 길이었나 보다,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이해한다. 그녀는 처음 보는 물건 대하듯 수레 속을 뒤적였다. 아까도 이만큼이었나? 누가 가져갔나? 그리고 경계하듯 주변을 둘러봤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고 자전거 탄 사람들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자신의 왼쪽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고 아이들이 떠들며 뛰어다녔다. 물가에는 갈대, 길 가운데에는 잔디, 화단에는 국화가 심겨져 있었고 단풍 든 벚나무와 은행나무가 길 따라 죽 서 있었다. 공기가 쌀쌀하긴 했지만 늦가을 나들이하기엔 좋은 날씨였다.

온천천에 왔나보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그렇게 이해했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칼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관절염 때문에 힘든 다리를 가지고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근처 벤치로 가서 앉았다. 바지를 걷어 올리니 무릎이 퉁퉁 부어 있었다. 병원에 또 가야하나 생각을 하다가 정강이뼈에 멍 든 자국을 발견했다. 오다가 어디서 부딪혔나보다. 휴, 그녀는 한숨을 쉬고 하천 너머를 바라봤다. 낡은 솜사탕 기계에서 사탕을 뽑는 영감이 무료하게 서 있었다. 한쪽 편에서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인라인스케이트 대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솜사탕을 사먹는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조금만 쉬고 하천을 건너가 저 영감에게 우리 집 가는 길을 물어야겠다, 그녀는 생각했다. 요즘은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일이 참 어려웠다. 행색이 추레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녀를 꺼려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을 자주 다치게 했다.

그렇게 생각해놓고 다시, 그녀는 멍해졌다. 오늘로 벌써 세 번째다.

아직 일흔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몹시도 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지역 토박이지만 아는 이웃이 얼마 없는 그녀는 흔히들 말하는 독거노인이었다. 일 없고, 가족 없고, 취미는 꿈도 꾸지 못한다.

젊을 때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아들 하나를 키웠지만 아들은 작년에 세상을 떴다. 결혼 때부터 지금까지 늘 가난했던 탓에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진 못했다. 아들은 공장에 다녔는데 사기를 당한 뒤로는 그녀와 거의 연락을 끊다시피 했다. 몇 달에 한 번씩 기십 만원 보낸 아들 이름이 찍힌 통장을 보면 살아있구나, 다행으로 여겼다.

막노동판에서 시장 행상까지, 안 해본 것이 없는 그녀는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지만 그것도 아들의 빚을 갚느라 처분하고는 한 달 이십만 원 나가는 쪽방에 살며 근근이 벌어먹고 살았다. 예순을 넘겨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해 폐지를 주우며 버텼다. 리어카를 끌고 부지런히 고물을 주웠지만 예순을 넘겨서는 관절염 때문에 그마저도 힘들었다. 시장용 손수레를 구해 폐지를 주워 하루 이삼천 원 버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작년,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했다. 아들이 죽자 그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다. 적은 돈이지만 전보다는 훨씬 사는 일이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폐지 줍는 일을 그만 두지 않았다. 아들이 죽은 것이 꼭 자기 탓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죽고 나서 그녀는 자꾸 멍해졌다. 아들과 있었던 일들부터 시작해 옛날 일들을 자주 떠올렸는데, 그때마다 맥이 탁 풀리며 멍해졌다. 그 상태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모르는 길에 서 있거나 폐지를 잘게 찢고 있거나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길에서 정신을 차리는 일이 그녀는 고통스러웠다. 넘어졌는지 쓸린 상처가 곳곳에 있었고 손수레는 망가지거나 잃어버렸고, 너무 먼 길을 걸어온 탓에 길 찾기가 힘들었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솜사탕 영감은 이미 가고 없었지만 그녀는 그런 일을 까마득히 잊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수레를 끌며 걷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 둑 위로 올라가야 했지만 그녀는 무턱대고 세병교 쪽으로 걸었다. 집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아직 멍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오른 다리를 절며 걷는 그녀의 망가진 수레가 탈탈탈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한참을 걸어 세병교에 다다랐다. 첨벙! 물속에서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졌다. 그녀는 길을 걷다가 하천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숭어였다. 아이 팔뚝만한 것이 여기저기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갈대 덤불 속에서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았다. 길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비둘기가 함부로 거닐었다. 그녀는 조금 유쾌해졌다. 그래서 물가에 종이 박스를 꺼내 깔고 앉았다. 바람이 차가워서 신문지를 펼쳐서 다리를 덮었다.

산업화로 더러운 물이 되어버린 온천천은 낙동강 물까지 끌어와서 다시 살려냈다. 지금은 수질이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죽었던 물이 다시 살아나다니.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떠올리자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가 따라서 떠올랐다. 어머니를 따라 이곳에 왔던 적이 있었는데, 왜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동래온천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래에는 원래 학이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동래학춤이 그냥 맹글어진 춤이 아닌기라. 을매나 자주 봤시모 춤까정 나왔겠노? 천년도 훨씬 전에 할매 하나가 이쪽에 살았어. 그 할매는 젊어서 남편 잃고 아이도 나무 하러 갔다 벼랑에 떨어져 죽어서 혼자 살았지. 산비탈에 손바닥만한 밭 부쳐 먹고 남의 집 심부름 해주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겨울만 지나면 먹을 게 똑 떨어지니까 그래, 사는 게 힘든 기라. 이른 봄에 아픈 다리를 절면서 나물이라도 캐먹을라고 나왔는데 하얀 학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저만치 떨어진 자리에 앉는거라. 하, 사람도 안 무서버하고. 근데 가만히 보니 그 학이 다리 하나를 몹시 저는 꼴이라. 막, 그냥 쓰러질 꺼 맹키로 절룩절룩 하는데, 할매가 지랑 처지가 같은데 안 딱하겠나? 근데 뭔 방법이 있어야지. 한참 보다가 나물을 캐서 그냥 돌아갔지. 담날 와 보니 그 놈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더란다. 사흘째 되던 날까지 그 자리에 있었지. 다리가 너무 아파서 못가는갑다, 걱정이 되어서 바구니를 놔두고 학이 있는 자리로 가봤단다. 근데 학이 슬쩍 옆으로 자리를 옮겨. 어? 근데 이놈이 다리를 안 저는거라. 더 가까이 가니까 학이 멀쩡하게 일어나서 하늘을 날더란다. 이상하다, 싶어서 학이 앉았던 자리에 가보니까 웅덩이가 있더란다. 근데 웅덩이 물이 맑은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기라. 속에서 물이 퐁퐁 솟는 게 보이더란다. 할매가 슬그머니 손가락 끝을 물속에 담가 봤지. 어? 뜨겁거든? 놀래서 손을 뺐다가 다시 담가봤지. 물이 미끈미끈하니 뜨거운 것도 참을 만 해. 그래서 할매가 두 다리를 물속에 담가 봤지. 어이구야, 세상에! 다리가 한 개도 안아픈기라! 그래서 맨날 찾아가서 다리를 담갔단다. 근데 며칠 지나니까 꼼짝도 못하고 질질 끌던 다리가 거짓깔맹키로 움직이는거라! 그 소문이 나서 동네에 병 있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물에 몸을 담갔는데 병이 다 낫았단다. 그게 지금 온천물이라. 연아. 이 담에 니 크걸랑 엄마캉 온천물에 한분 가보자이. 알았제?

육십년은 지난 이야긴데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렸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학이 불쌍한 할매에게 온천물을 알려주기 위해 온 선녀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온천물에 다리를 담갔다가 다리를 치료하고 떠난 학을 우연히 할매가 본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내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신세고. 선녀님 한번 만나면 소원이 없겠다. 그녀는 또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의 엄마도, 그녀 자신도 온천물은 구경 한 번 못해봤다.

지난여름 폭염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공공기관에 무더위 쉼터가 생겨났다. 하지만 그녀는 쉼터에 가지 못했다. 가봐야 다른 노인네들의 자식 자랑밖에 들을 것이 더 있겠나, 싶었다. 노인네들은 먹을거리를 챙겨오곤 했는데 그녀는 그렇게 생색을 낼만한 처지는 못 되었다. 늙고 병들고 돈이 없어도 자존심은 있었으므로 그녀는 홀로 더위를 참았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가난 때문에, 사람 때문에 이래저래 마음을 다치고는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화를 내거나 대답하지 않거나,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 사람들에게 괴팍한 할마시라는 평을 듣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무시당하지 않았으므로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그래서 복지사가 찾아와 치매 검사를 받아보자 했을 때도 버럭, 화를 냈다. 이 세상에 자신을 신경 써 주는 이가 그 처녀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폐 끼치기 싫다는 의사를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웠다. 시민공원은 금연 장소였지만,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모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녀는 그런 쪽으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저 눈가가 젖어든 채 옛날 일과 현재 일을 오가며 자꾸만 멍해지고 있었다.

꽤―액!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에 왜가리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긴 다리를 물속에 담근 채 목을 어깨까지 움츠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 역시 오랫동안 새를 쳐다봤다. 그녀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벌떡 일어서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구름이 지나가고 햇빛이 그녀를 향해 비추었다. 그녀는 물이 따뜻하다고 착각했다. 햇빛이 부서지는 하천의 윤슬이 꼭,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관절염으로 퉁퉁 부은 다리를 씻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직후 피 묻은 병기를 씻었다는 세병교 아래에서 그녀는 자신의 평생 병기였던 다리를 정성껏 씻었다. 왜가리, 해오라기, 오리, 참새, 비둘기, 개구리, 잠자리, 귀뚜라미, 수달까지 살고 있다는 온천천. 그것이 인공의 힘이라는 것을 그녀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 약력
●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 부산작가회의 회원, 부산소설가협회 사무차장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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