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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 <20> 소설가 배길남 '영도 갈맷길-조내기 고구마'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2-11-28 11:48:47, 조회 : 2,942, 추천 : 649

- 귀한 조나기 고귀마 아이가

고구마. 메꽃과에 속하는 쌍떡잎 식용작물로 성분은 수분 69.39%, 당질 27.7%, 단백질 1.3% 등이며 주성분은 녹말이다. 멕시코와 남미에서 자라던 이 작물은 콜럼버스에게 스카우트 되어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비상식량 정도로 사용되던 고구마는 스페인의 필리핀 정복 시 동양으로 슬쩍 흘러온다. 그때까지 천대받던 고구마는 1594년, 명나라 상인 진진용을 만나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재배법도 쉽고 수확량도 많았던 고구마는 명나라에서 크게 히트를 친다. 그로부터 11년 뒤, 류큐 왕국의 사신 노쿠니 쇼칸(野國總管)에 의해 고구마는 해외 진출을 하는데 4년 뒤인 1605년, 일본의 시마즈(島津家久)가 류큐 왕국을 정복하면서 고구마는 일본까지 넘어가게 된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일본에서 고구마는 대스타로 등극한다. 나카사키에서 간사이(關西)지방으로, 이어서 간토(關東), 그리고 일본 전역으로 퍼진 고구마는 1715년에 마침내 대마도까지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영조 39년(1763년) 음력 10월 8일 밤, 대마도 사스나

"와아, 정사 어른! 이거 맛 직이는데예?"

"허허, 그러냐? 그럼…, 옛다! 이거 구운 것도 한 번 먹어봐라."

성칠은 통신사 정사(通信使 正使) 조엄이 건네는 희한한 작물을 맛보는 중이었다. 구운 것의 껍질을 벗기니 애기 콧물보다 노란 알에서 김이 모락모락 새어나왔다. 한입 베어 무니 들큼한 것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맛이었다.

"자, 이젠 삶은 것도 맛봐라."

뜨거운 걸 삼키기도 전에 조엄은 또 한 조각을 내밀었다.

"어, 어? 와이라십니꺼? 벌써 세 개나 묵었어예. 배 터자 직일라 합니꺼?"

"그렇지, 금방 배가 부르지? 허허허…."

웃음이 서서히 거두어지며 내밀었던 손이 내려갔다. 손사래 치던 성칠이 순간의 침묵을 감지하고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조엄의 무거운 목소리가 성칠에게 떨어졌다.

"성칠아, 내 너를 쭉 지켜보고 있었던 바, 부탁하나만 해도 되겠느냐?"

"무, 무슨 말씀이신지…."

"이틀 뒤 부산포로 가는 비선(飛船)에 탈 수 있겠느냐?"

성칠의 눈이 커졌다.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 행렬에 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지체 높은 양반네들이야 통신사에서 빠지려 귀양길마저 감수한다지만, 자신과 같은 관노는 일본에 갔다 오는 순간 팔자를 고칠 수 있었다. 풍운의 꿈을 안고 있던 성칠에게 그 말은 날벼락과도 같은 소리였다.

"저, 정사 어른. 저, 저는…."

"알고 있다. 네가 통신사에 들어오려 얼마나 애를 썼다는 걸…."

조엄은 품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더니 방금 작물을 구워낸 화로에 던져 넣었다. 종이로 된 문서는 금세 불이 붙어 타들어갔다. 성칠의 얼굴이 타들어가는 불빛 때문인지 벌겋게 상기되었다.

"저것은 네 노비문서이다. 그리고 그 곁에 굽고 있는 것이 네가 방금 먹었던 작물이다. 이곳에서는 효자마(孝子麻), 그러니까 왜음(倭音)으로 고귀마(古貴麻)라 부른다."

쌀 한 말을 훔친 이유로 매를 맞아 죽은 아버지…, 그 죄는 자식에게까지 이어져 코흘리개 때부터 관노에 박혀 살아왔던 성칠이었다. 타던 문서는 곧 재가 되어 굽고 있는 고귀마 곁에서 사그라졌다.

"근 십년간 나라엔 흉년이 들어 농가의 빈곤이 끝을 향하고 있다. 지금 네가 먹었던 고귀마는 식량이 부족했던 왜의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작물이다. 만약 우리 땅에서 재배된다면 수천 아니, 수만의 백성들이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 성칠아! 네 노비문서를 고귀마 곁에 태운 이유를 알겠느냐?"

성칠이 "정사 어른!"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당장 이틀 뒤, 고귀마 종자와 재배법을 가지고 부산포로 떠나거라. 관의 허락을 얻고 봄에 파종하는 것이 성공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지키는 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릎 꿇은 성칠을 조엄이 일으켰다. 울고 있는 건 성칠이었지만 오히려 뜨거운 것은 정사 조엄의 손이었다.

"네가 그 일을 맡아다오.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성칠이 조엄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감정에 북받쳐 말을 하진 못했지만 그의 눈은 이미 승낙의 뜻을 담고 있었다.
  

영조 39년(1763년) 음력 10월 12일 부산포행 대마도 비선(飛船)

"우웩, 우웨엑!"

뱃멀미로 구역질을 하던 성칠은 결국 갑판에 드러눕고 말았다. 차가운 겨울의 빗발이 그의 얼굴에 떨어져 왔다. 심한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비선은 빠른 속도로 부산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혹여라도 파종 시기를 놓친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에도 고통 받을 백성들을 생각한다면 내가 이렇게 서두는 이유를 알 것이다."

조엄의 신신당부가 머리에 떠올랐다. 성칠은 얼른 일어나 선실로 갔다. 고귀마 종자 포대에 이미 묶어둔 널빤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배가 파손된다 하더라도 종자를 바다에 빠뜨릴 순 없다는 생각에 묶어둔 것이었다.

"부산포에 도착하거든 곧바로 부산진 첨사 이응혁을 찾아가거라. 내가 보냈다고 하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조엄의 당부를 다시 떠올리며 고귀마 포대를 쓰다듬던 성칠이 구역질에 다시 기침을 했다.

"우욱, 쿨럭! 썅놈의 영감탱이, 내를 이 고생 시킬라고 처음부터 작전을 다 짜놨던기라…. 어? 어이, 뭐 쳐다보노? 카악! 스미마셍은 무신 스미마셍. 절로 가라, 절로. 훠어이, 훠어이!"

말은 투덜거리면서도 왜인 선원이 고귀마 포대를 슬쩍 바라보자 얼른 손짓으로 쫓는 성칠이었다.

영조 40년(1764년) 음력 1월 27일 동래부 부산포 절영도(絶影島) 봉래산 밑 기슭

"보소들, 인자 좀 쉬었다 하입시다."

막사의 문에 못을 박던 성칠이 외치자 군졸들이 피워놓은 모닥불로 몰려들었다. 과연 부산진 첨사 이응혁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군졸 넷을 딸려주었고 대마도와 비슷한 조건의 재배지로 군사지역인 절영도를 먼저 추천할 정도였다. 들은 바로는 그의 아버지 이시보가 조엄의 친구이며, 작년엔 통신사 군관 자리를 거절한 것으로 귀양 갈 것을 조엄이 구해준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일개 관노 출신의 성칠을 물심양면 돕는 것도 조엄의 부탁이었기에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영감탱이, 진짜로 철저하네, 철저해."

절영도로 들어가던 첫날, 배에서 성칠이 중얼거렸던 말이었다. 이제 막사를 다 지었으니 땅을 고를 차례였다. 한 달간 절영도 곳곳을 돌아다니던 성칠은 대마도의 고귀마 밭과 가장 흡사한 지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봉래산 동쪽 해안가의 구릉 지대였는데 양지 바른 곳이었고 바람이 적당했다. 부산진의 관리들이 주기적으로 드나들었으나 성칠은 아예 그곳에 상주하기로 마음먹고 막사를 지었다. 이제 종자를 잘 관리하고 봄의 파종 시기에 맞춰 재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성칠은 바다를 바라보며 다가오는 봄의 바람을 한껏 마셨다. 불과 네 말의 고귀마가 점점 불어나 온 백성들의 배를 불릴 생각을 하니 온몸이 짜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감탱이 오기만 와 보소! 우하하하핫!"

느닷없는 성칠의 웃음에 불앞에서 졸던 군졸 하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영조 40년(1764년) 음력 6월 10일 절영도 봉래산 밑 고귀마 밭

"이봐, 성칠이. 인자 우리가 지킬테이까 잠 좀 자지."

"그래 잘 지키가 밭 한 떼기가 아작이 났는교?"

두 눈이 시뻘게진 성칠이 껄끄럽게 대거리를 하며 봉래산을 노려보았다. 며칠 전 달려드는 멧돼지를 피하다 다친 다리가 뻐근했다. 절영도. 사람이 살지 않지만 수목이 우거진 섬이었다. 예전에 말을 키우던 목장으로 쓰던 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다를 헤엄쳐 온 노루와 멧돼지가 들끓는 섬이었다. 놈들은 틈만 나면 고귀마 밭을 뒤엎어 놓곤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악재였다. 울타리를 치기도 하고 포수를 불러 몇 마리 잡기도 했지만, 자고 일어나면 밭의 일부가 사라져 가는 형국이었다.

"첨사 어른이 사람을 더 보낼라 해도 방법이 없다. 이 가뭄에 논에 물댈 인원도 모자라는데?"

군졸 하나가 누구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치밀어 오르는 욕을 참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그나저나 신기하제. 고귀만지 뭔지 이거는 물도 많이 안 주도 요래 알이 차가는 거 보면…."

그 소리를 듣자 치밀어 오르던 화가 금방 누그러졌다. 대마도에서 배운 재배법이 절영도의 밭에서 실패하면 어쩌나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던가? 며칠 전 막사가 부서질 정도로 큰 바람이 불었지만 자라는 고귀마 덩쿨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성칠은 조엄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생각할수록 대단한 양반이었다. 일본에 몇 차례나 통신사가 갔어도, 초량왜관에 대마도의 세견선이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누구 하나 이 고귀마에 대해 언급한 양반은 없었었다. 제 배 불리기만 바쁜 이들의 눈에는 이 구황작물이 하찮게만 보였을 것이었다. 성칠은 고개를 들어 일본 쪽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제 통신사 일행은 부산포로 돌아오고 있을 것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성칠이 군졸들에게 소리쳤다.

"내 쪼깨만 잘테이까 제발 좀 똑바로 지키 주소. 썅놈의 멧돼지 새끼 보이면 깨우고!"

영조 40년(1764년) 음력 9월 5일 절영도 봉래산 밑 고귀마 밭

시험 재배한 고귀마를 수확하기로 정한 날이었다.

"어? 거기! 그라믄 종자가 뿌사진다 아이가." "보소, 보소! 거, 시킨 대로 좀 캐라."

밭고랑 여기저기서 성칠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여섯 달이 넘도록 같이 있었던 군졸 하나가 지나가는 성칠을 불러 세웠다.

"이봐, 성칠이! 우리 고귀마 한 번 배터지게 묵을 수는 있는 기가?"

"종자로 쓸 거 말고 따로 빼놨다. 걱정하지 마라!"

"허허, 이 고귀마를 내년에는 다대포에도 심는다면서? 그라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다이."

곁에 있던 또 다른 군졸이 말에 끼어들었다.

"그란데 우리가 수고한 것도 모르고 처 묵으면 영 재미가 없는데? 이름이라도 지어 보내야지."

그 소리를 들은 성칠이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와 그라고 섰노? 맨날 조씨 영감탱이, 조씨 영감탱이 하더이? 조씨가 갖다 준 고귀마니까 조나기 고귀마 아이가?"

"허허허, 맞네. 조나기 고귀마."

조나기 고귀마…. 조엄의 얼굴이 다시 떠올라왔다. 성칠은 평소 버릇처럼 저 멀리 동쪽 바다를 쳐다보다 갑자기 머리를 긁으며 돌아섰다.

"아, 맞다. 영감은 지금 한양에 있제? 정신 하고는…. 어? 거기, 그 포대에 넣으면 안 되지!"

정신을 차린 성칠이 소리치며 밭고랑 끝으로 뛰어갔다. 성칠과 얘기를 나누던 두 군졸이 마주보고 씨익 웃더니 고구마를 하나씩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들 곁에는 고귀마 무더기가 사람 키만큼 쌓여있는 것이었다. 물을 끼얹은 붉은 고귀마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 약력
●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사라지는 것들'로 등단
● 현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장
●'부산데일리 훌랄라 기획부' 등 다수 작품 발표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서대학교, 부산작가회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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